오늘은 5.18 민주항쟁 41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촛불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광주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학살의 주범들도 단죄되지 않았다. 학살자들은 아직도 뻔뻔스럽게 북한군이 선동했다느니, 시위대들이 무장하여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는 둥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죄를 씌워 고문하고 감옥에 보낸 자들은 지금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계엄군으로 출동하였던 장교와 병사들이 잇따라 발포와 저격에 대한 증언을 내놓고 있다. 당시 계엄군이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미리 배치해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조준 사격했다는 당사자의 진술도 나왔다.
제11공수여단은 5월 21일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앞에 가득 모인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를 한 직후,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조준사격을 했다는 진술도 확보되었다. 이들은 집단 발포에 놀라 달아나던 시위대를 일일이 조준해 사살하였던 것이다.
다음날인 22일 부터는 제3공수여단이 광주교도소 감시탑 4곳과 건물 옥상에서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M1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는 증언도 확보되었다.
또한, 광주교도소 양쪽의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최소 13차례 이상의 차량피격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증언과 문헌을 통해 확인되기도 하였다.
자신이 5·18 당시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이었다고 주장했다가 최근 이 주장이 사실무근이었음을 밝힌 탈북민이 얼굴과 본명을 드러내고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김명국'으로 알려진 탈북민 정명운 씨는 "2008년도쯤에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줄 몰랐다"며 광주 시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북한군 개입설의 진원지가 되었던 그는 지금껏 광주에 가본 적도 없다면서 그간 자신의 주장을 부인했다. 또 2010년에는 재향군인회와 정치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100억을 주겠다는 제안이 있었는데 거절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5.18 민중학살은 당시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광주학살이 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하니 언론은 신군부의 앵무새가 되어 북한군 개입설, 시위대 무장으로 어쩔수 없는 진압과정이었다고 국민들을 속였다.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적폐 카르텔의 입맛에 따라 춤추는 언론이라는 칼이 오늘 이 순간까지 이 나라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유언비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유언(流言)’과 ‘비어(蜚語)’의 합성어다. ‘유언’이란 떠돌아다니는 말이다. ‘비어’에서 비(蜚)는 아니 비(非)와 벌레 충(虫)의 결합어인데, 상상의 동물이다. 사전에는 “소 비슷한데 대가리가 희고, 외눈에 뱀 꼬리가 달린 짐승”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상상의 동물이 하는 말을 뜻하니, 비어란 상상에 근거한 이야기란 의미다.
유언비어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유언비어가 진실을 요구한 국민의 말일 수 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군부독재 치하에서 우리 국민들은 유언비어로 진실을 말해왔다. 유언비어는 억압과 폭력의 시대, 독재 시대에는 진실을 알리는 순기능 작용을 하고 진실과 평화를 추구하는 시대에는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사악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 군부정권에 항거하며 반독재투쟁을 이끌었던 함석헌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은 유언비어 속에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유언비어에 감춰진 진실이 하늘에서 나온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이다.
온갖 거짓과 술수로 권력을 지키려고 했던 박정희는 종신 대통령을 꿈꾸며 1973년 10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 헌법을 제정한다. 유신 헌법은 겉으로는 평화통일과 민주주의, 경제적인 평등 실현을 표방했지만, 사실은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이었다.
유신 헌법 반포로 만들어진 유신체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을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시켰다. 또 대통령 중임 제한을 없애고, 임기를 6년으로 늘렸기 때문에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이런 폭거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자 박정희는 긴급조치 1호, 9호를 선포하며 유신체제에 대한 유언비어 유포를 강력히 처벌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체제도 10년을 못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피살로 막을 내리게 된다.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의 피살로 민주화의 봄이 열릴 뻔 하였지만 그의 후계자인 전두환에 의해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전두환 신군부는 12.12 쿠데타와 광주 민중 학살을 발판으로 집권하게 되고 이 땅의 민중들은 또 다시 군부 독재와의 지난한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체육관선거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신군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언론 통제다.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 해직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취임하자마자 종편 4개사를 만든 것도 이런 맥락이다.
1980년 11월 신문 28개, 방송 29개, 통신 7개 등 64개 언론사가 신문 14개, 방송 3개, 통신 1개 등 18개 언론사로 강제 통폐합된다. 이 과정에서 172종의 정기간행물이 폐간됐고 1,000명 이상의 언론인이 해직되었다. 이 일은 보안사가 주도하였고 신군부에 비판적인 언론과 언론인들을 철저히 솎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언론 통폐합 이후 전두환 정권은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 통제를 더욱 강화한다. 언론사와 언론인들은 보도지침에 맞게 기사를 작성하고 내보내는 등 권력의 충실한 개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대가로 호의호식을 누렸다.
공영방송인 KBS가 앞장서 "땡전"뉴스를 방영하는 등 전두환 대통령의 찬양이 심해지자, 분노한 국민과 시민단체들은 1986년부터 KBS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을 벌여 큰 국민적 호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땡전" 뉴스란 전두환 정권 시절 뉴스를 빗대는 말인데, 당시 모든 뉴스에서 전두환의 활동 기사를 맨 먼저 보도한 데서 나온 것이다. 당시 TV 뉴스는 시작할때 ‘땡’ 하고 시보가 울린 후 곧 바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라는 멘트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땡전뉴스란 이른바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를 빗댄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적폐 언론들은 권력과 자본과의 유착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그렇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저버린 결과가 오늘 우리 언론의 민낯인 것이다.
한국언론재단은 2020.6.17 <미디어이슈 6권 3호>에 한국의 디지털 뉴스 이용 현황을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실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한국인들은 자신과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하는 ‘뉴스 이용 편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44%가 답하여 40개국 평균 28%보다 응답률이 16%p 높았다.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4%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가 한국은 21%로 40개국 중 최하위였으며, 20대 여성의 신뢰도는13%로 특히 낮게 나왔다.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연령이 높을수록 높게 나타났는데 그 중에서도 50대 여성이 26%로 가장 높았다.
▶ 한국에서 허위정보나 오정보 채널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유튜브로 조사되었다. 조사대상 40개국의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률 평균은 27%이었으나, 한국은 45%로 나타나 평균보다 18%p가 높았다. 또 한국의 뉴스 이용자들은 검색 엔진에서 특정 웹사이트나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위의 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언론의 폐해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 언론의 뉴스는 진실이 아닌 거짓을 보도하기도 한다는 인식이 아주 넓게 퍼져 있다. 또한 자신과 관점이 다른 뉴스를 배격하고 같은 관점을 선호한다는 것은 우리 언론이 아주 극단적으로 편향화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언론의 최대 피해자는 20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국경없는기자회가 180개국 조사해 밝힌 '2020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42위로 미국 45위·일본 66위를 제치고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물론 아시아에서는 단연 1위다.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는 한국의 언론사들은 이를 악용하여 편향적인 뉴스, 왜곡된 가짜 뉴스들을 마구 생산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죽하면 우리 국민들이 기자나 언론을 ‘기레기, 찌라시’라는 은어로 비하 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아침 SNS를 통해 "우리는 오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며 "오월 광주와 힌츠페터의 기자정신이 미얀마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그 옛날 광주 학살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군부쿠데타 100일째를 맞은 5.10일 현재 유혈진압으로 781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 미성년자가 50명이라고 한다. 일터는 멈추었고 민생은 더욱 참혹하다. 군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무차별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폭력을 중단하겠다던 아세안 합의는 3일 만에 깨졌다. 미얀마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미얀마 민중이 끝내 승리하여 군부독재가 종식되길 염원해 본다.
41년 전 광주의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미얀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며 그때의 참혹했던 광주학살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는 촛불 정부 임기 내에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이 완결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