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불빛] 귤 빨리 까기 대회05
[작업실 불빛] 귤 빨리 까기 대회05
  • 권용화 <볕드는 창>
  • 승인 2025.02.17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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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때는 인천 부평구 갈산동까지 이사했다. 3살, 5살 된 우리를 두고 아버지 어머니는 음료 공장에서 귤 까는 일을 하셨다. 아이들이 나이가 어린데 어떻게 했냐고?

“저희가 봐 드릴 테니 나가서 돈 버세요.”

주인댁 언니 오빠의 따뜻하고 어마무시한 배려 덕이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 집도 와글와글한 대가족이었는데 한번은 사진을 찍는다고 데리고 나갔다. 안겨서 기다리는 동안 맨발이 몹시 시렸던 기억이 있다. 12살 쯤 된 언니에게 업히기도 하고 18살 쯤 된 언니 오빠에게서 밥도 받아먹으면서 우리는 컸다.

귤 빨리 까기 대회 ⓒ권용화

공장에서는 사기 진작을 위해 종종 귤 빨리 까기 대회를 열곤 했다.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열성은 귤을 까느라 오른손에 쥔 수저 목이 댕강 부러져 달아나버릴 정도였다.

어느 날 어머니는 대회에서 1등을 따냈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었으니, 어머니는 학업이 무졸로, 한글까지는 어떻게어떻게 독학을 하셨으나 셈은 할 수 없으셨다는 점이었다. 1등을 한 사람이 사람들 각자의 깐 귤 개수를 세어 귤 하나에 100개에 천원이면 천원, 300개면 3천원, 500개면 5천원 그런 간단한 셈을 해 상금을 줘야 했는데, 어머니에겐 그게 간단한 셈이 아니었다. 물론 위의 셈 보다는 보다 복잡한 셈이 어머니를 가로막았으리라.

어머니는 그만 속으로 울상이 되어 아버지에게 슬쩍 도움을 요청 했다. 결국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를 구제해줬다.

그런데 과연, 요즘 세상에도 옛날의 그 언니 오빠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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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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