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작품이 보고 싶다
<G밸리 시간사전 아흔아홉>
(2016~2022)을 추억하며
엊그제 일이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어제 처음 오신 선생님이 그러신다.
“어디 살아요?”
“아 예, ○○아파트...”
“난 삼성. 그럼 이쪽으로 가볼게요. 난 차로...”
그제야 나는 우리가 아직 통성명도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 촉이 과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회원님은 ‘삼성’에 산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신 분 같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인 사례는 수 없지만, 어쨌든 내 고향 광명은 이상한 도시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디 사냐는 질문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아파트 이름을 대면, “어머, 그럼 몇 동이세요?”라며 훅 질문이 들어온다. 우리 집 평수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전의 이야기이지만, 하안동 주재근 베이커리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스스로 말을 트며 지금 딸네 집에 왔는데 내 집은 60평이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안경 쓴 할아버지를 매번 만날 수 있었다.
‘집=사유재산’이 몇 평인지 반추하는 사람들
그래서였을까. 나는 벚꽃 구경을 하는 척, 단풍 구경을 하는 척 안양천에 갔다가 슬쩍 다리를 넘어 업무용 빌딩 숲과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을 하다 오곤 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지만 혹시 말을 섞는다면, 그곳에서 나는 요즘 어떤 일을 하는지, 주로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새로운 경험은 없었는지,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같은 것들을 이야기 나눔 하고 싶다. 그곳은 ‘일터’이고, 일터에서는 집이라는 사유재산의 평수보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일터 혹은 함께 향유하고 있는 쉼터의 평수가 중심일 것이라는 기대 속에.
내 집의 평수를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 나는 그런 곳이 좋으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담백한 결의 지인들을 사랑한다.
가산디지털단지역 7호선 지하, 설치작품 <G밸리 시간사전 아흔아홉>(2016~2022)은 어쨌든, 그렇게 어슬렁거리다 발견했다. 밝고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바삐 자기들의 빌딩으로 걸음을 옮기는 곳. 때마침 도착한 지하철은 한 무더기 인파를 또 토해내고, 사람들 중 이 작품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중앙을 두고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온 허리 높이 구조물은 검정색이라, 쌓이는 흰 먼지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렇지만 한 신사는 아랑곳없이 양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구조물을 책상 삼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의 몇 평 정도를 타인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까
“미싱 바늘에 다섯 번은 엄지가 찔려 봐야 미싱질을 잘 하게 되는 거다.”
아이가 3살 무렵 내가 손바늘 대신 미싱 앞에 앉았을 때, 친정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한때 어머니는 시골에서 올라 와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졸업을 손꼽아 기다리는 여공 지망생들 틈에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결국 무산되었고, 엄마는 고향 충남 예산으로 돌아가 결혼을 했다. 회사 가기 며칠 전, 공장에 취업했던 친구가 취직을 말렸기 때문이었다.
“잘 데가 없어서 공장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자는데, 누가 자꾸 몸을 만지는 거야. 뿌리치고 뿌리치고 꼬집고 발로 차 보아도 끈덕졌어.”
결국 친구는 더 엄청난 일을 당했음을 고백하며, 눈물로 엄마의 취업을 막았다.
엄마의 세대는 참으로 힘든 세대였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우를 못 받고, 그들의 노동을 밟고 그들을 관리하는 자가, 그 위에는 관리자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는 왕과 여왕이 있었다.
다만 여공들은 ‘또한 다르게’ 살아남았다. 무슨 일이든 붙잡아 자식들 바라지를 했다. 여행이나 나들이도 자식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놀지 않고 청소부, 파출부, 요양보호사 일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그래도 그때 분들이 일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다니셔.”
지나치게 경로우대를 하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아니면 나도 벌써 ‘꼰대’가 돼서일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말끔한 옷차림을 하고 한 손에 커피를 들 수 있는 이유는 카페 주인이나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 덕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정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분들이 아직도 일을 하시고 그분들과 같은 결의 사람들이 아직은 다수라서, 그분들처럼 지고지순한 분들이 우리 사회의 몸통을 이루고 있어서라고 감히 조용히 주장해본다. 때문에, 이미 철거된 줄 알면서도, 담당자는 이직을 하여 깊은 이야기는 못 들었어도, 그래도 문득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 역에 가서, <G밸리 시간사전 아흔아홉>을 다시 보고 싶다. ⓒ容和 권혁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