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름다운 권리
(드라마) 아름다운 권리
  • 김경미
  • 승인 2003.09.30 00:47
  • 댓글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권리


“우리는 명문대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선배의 빛난 입시성적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이기주의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친구타도에 이바지할 때이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입시의 지표로 삼는다. 영악한 마음과 빈약한 몸으로 입시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실을 무시하고 우리의 성적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 찍기의 힘과 눈치의 정신을 기른다......(이하 생략)”

이 글은 국민교육헌장을 패러디해서 만든 <고교교육헌장>이다.물론 이 글을 만든 사람은 학생들이다. 처음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웃음이 나기보다는 그 신랄함에 어른으로서 가슴이 콕콕 쑤실 지경으로 부끄럽고 미안했다. 우리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자라느라 끊임없이 근질거리는, 스펀지 같은 감수성으로 무장하고, 그 황금의 시간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학원까지 다녀야 한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해도 모자랄 그 시절에 그들은 무조건 열심히 입시공부하고, 시험 치며, 성적순인 행복 때문에 인생의 다른 행복을 찾고 만나고 느껴볼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불행하다, 아니 진정한 행복을 배울 기회를 참 많이 박탈당하고 살고 있다.
<유엔 어린이 청소년 권리조약>에도 이런 조항이 있다.

“우리는 사적인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제16조)” ,
“우리에겐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제30조)”

참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 어른들이 자신의 자식이나 제자들에게 이 권리를 지켜주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왜냐하면 학생은 공부해야하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야하며, 그래야 출세 할 수 있고, 훌륭한 사회구성원이 된다는 어른들의 논리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어릴 적 최상위 그룹의 성적으로 학교를 다니다 명문대를 가고 다들 선망하는 사회의 탑클라스가 되어도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추지 못해 사회 전체를 어지럽히고 많은 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들을 보면 그 논리의 허구는 금방 짐작이 될 것이다.

한때, 드라마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면서 광명의 몇 몇 고교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엔 광명시가 고교 평준화 지역이 아니란 사실도 몰랐다. 취재 중에 학생들과 교사들에게서 잠시나마 어떤 우열 의식, 열등감, 스트레스를 느낀 적은 있으나 애초에 비 평준화 지역이란 것을 모른 나는 지역 내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일반적인 성적에 대한 열등감 정도로 쉽게 여겼었다. 말하자면 광명에 10년 넘게 살아 왔으면서도 나에게 자식이 없었기에 쉽게 무신경하게 살아 왔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광명시고교평준화 연대에서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또 이제는 일일주점을 한다고 티켓을 사라고 하니 광명에 사는 우리 학생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한 때는 학생으로서 입시의 스트레스를 받아 보았고, 그런 세월을 거쳐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코 고교 시절에 배운 학교 교과의 공부가, 또 그때 느꼈던 입시의 스트레스가 지금의 내 삶에 얼만큼의 자양분이 되었나를 생각하면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오히려 그때 ‘사람인 선생님’을 만나, 교사를 단지 배워야 하고 복종할 선생님이 아닌, 함께, 어렵지만 보듬고 나누어야할 이 세상의 동지로 느꼈던, 그리고 똑같이 그런 식으로 함께 어울리고 꿈을 이야기하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그런 사람들과 함께 되었던 어떤 사건들이 나에게는 더 큰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중학교 때부터 성적에 볼모 잡혀 친구를 경쟁 상대로 보아야 하고, 고등학교를 들어가면 암암리에 마음 속에서 성적으로 친구 사이에 서열이 나뉘고, 성적 올리는 데만 급급해, 교사와 학생 사이, 혹은 학생과 학생 사이에 나눌 수 있는 많은 아름답고 소중한 기회를 빼앗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는 사적인 삶을 누릴 권리가 있고,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들이 스스로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여유도 없어, 그들이 그 소중한 권리를 찾을 수 없다면, 우리라도 나서서소중한 그 권리를 찾아줘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도를 바꾸는 것이건 의식을 바꾸는 것이건 지금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두고만 볼 일은 아니다. 이제 우리의 사소한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권리를 빼앗는 불행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10월 17일에 있을 일일주점에는 평준화에 관심 있는 분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분들을 초대해서술 한 잔 하며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권리를 찾는 길 중에 ‘고교평준화’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서로 이야기하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고민을 해 본다면 이 보다 의미 있는 술자리는 없을 듯 싶다.그래서 지금 당장 달력에 10월17일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권리를 생각하는 날’로 정해서 다른 술자리 약속은 비워놓고 평생학습원 지하의 까페떼리아로 와주시길 많은 분께 바래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경미 2003-09-30 00:47:16
여우촌님, 참으로 반갑습니다. 님의 글을 보면서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했지요.

여우촌에서 2003-09-30 00:47:16
내가 아는 분 중에는 글 쓰는 이가 '다'지요. 시나리오 작가도 꽤 있지요. 나를 그런 분들이 그리 꾸짖었지요. 몇 십년을 뛰어 넘어 내게 그분들은 선생이라 불렀구요. 하지만 나는 그들이 반반입니다. 내가 글의 팬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내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주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과 생각이 너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반반이라는 내 생각입니다. 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느데... 나도 팔리는 글을 열심히 연구 했지요. 후배는 추리소설을 끌적거리지요. 또는 무혀지를 갈기든지... 그들은 자기를 작가라고 늘 소개 합니다. 혹 만 날 수 있겠지요. 내생각에는 글로 먹고 살기가 '절대' 불가능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아들은 벌써... 잘 생긴 외모에 똑똑한 머리 그리고 유벌난 독서력.. 칭찬인가요. 내가 뭐라고 사과를 할까.

김경미 2003-09-30 00:47:16
그리고 직장을 바꾸셨군요. 제 짐작에 미숙님 주변 상황이 바뀌었나 생각하긴 했는데..항상 묵묵히 헌신적인 모습으로 감동을 주신 님을 가끔 목소리라도 들으며 안부 전화라도 하고 싶습니다.

김경미 2003-09-30 00:47:16
미숙님, 무슨 말씀을요..그간의 노고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한데..영화티켓 얘기 안 할테니까..

심미숙 2003-09-30 00:47:16
직장을 바꾸다 보니... 연락드릴 여유가 없어서요... 그리고 제가 유일하게 개혁당에 도움이 되었던 전화 업무를 못 하게 되니...도움될게 없다 싶어 더 죄송한 마음에 연락을 못드리겠네요...이 광명시민신문을 통해서나마 접하겠습니다. 조은나라님 영화티켓 미안해서 못받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