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
21일 부산일보에는 <혈세 낭비 부끄러운 고백>이란 제목으로 박홍규씨 (영남대 법학 교수)의 칼럼이 실렸다.
내용은kbs 의
<베토벤을 보는 또다른 시선: 박홍규의 베토벤 평전> 이란 제목으로 21일 방영된 그 날 실린 이 칼럼 덕분에 KBS는 발칵 뒤집혔다.
공명방송의 이미지 실추의 고민도 있을 것이고, 이 문제 자체의 처리를 두고도 난처했으리라.
방송가 주변의 뜨내기들은 비아냥하듯 뭐 그 정도 가지고 처벌하면 처벌 안 당할 놈 없겠네? 그 놈 참 운 더럽게 없다~. 하기도 하고, 같은 감독들은 말 꺼내기도 껄끄러운 눈치다.
작가란 직업은 방송국 일을 하면서도 그저 원고 써서 주면, 원고료 지급일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끝나거나, 혹 취재나 촬영장에 가도 감독이 알아서 지출을 하고 정산해서 올리니까 그런 속 사정을 자세히알 일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함께 일한 감독들의 평소 얘기를 들었을 때와는 상당히 달랐다. 아마도 드라마는 보통 조연출이 돈관리를 하고, 감독은 열심히 드라마 만드는 일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돈을 그런 식으로 개인적으로 사용하기가 난처한 구조인데다가, 보는 스텝 배우도 한두 명이 아니니 그런 식으로 했다간 욕먹기 십상이리라.
그런데
게시판에 들어가보니 시청자들 대부분은 우리가 내는 시청료로 해외여행가서 잘 놀고 왔냐며, 말하자면 시청료받는 공영방송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 일은 KBS차원에서 잘 처리해야할 문제다.
그 피디는 하필 적당히 같이 놀고 이해해줄 사람이 아닌, 깐깐한 교수
와 동행한 것이 운이 나빴다고 통탄할지는 몰라도, 그의 잘못은 명백한 것 같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공영방송이 썩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참 세상이 그래도 나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작가를 처음 시작할 무렵만 해도,매니저에게 돈이나 선물을 안받겠다며 만약 나한테 그런 것을 주는 매니저가 있으면 당장 그 다음 주에 그 매니저 담당 배우한테는 대사 안 주겠다고 깐깐하게 구는 나를 보며 감독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김작가가 그러면 우리도 돈 받기 난처하잖아요...하며 너무 그래도 세상 살기 어렵다고 넌즈시 내 걱정을 했었다.
(물론 이 감독들은 내가 볼 때 꽤 깨끗한 편에 속하는 감독들이었다. 내가 그런 식으로 하면 매니저들이 나를 다루기 어려운 작가로 알게 되고
그러면 다음 번 캐스팅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적당히 비슷하게 놀아줘야 대하기 편하고 일하기도 수월하다는 뜻일거다. 얼마 전만 해도 깐깐함이 미덕이기 보다는 '바보' '피곤한 사람'
'까다로운 사람'으로 불리워졌던 것이다)
그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이런 일로 그 담당 피디가 문책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한 세월이 되고, 바르게 사는 것이 '바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 된 거 같아 그나마 위로가 된다.
비리는 어디서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나도 살다보면 죄를 짓고 살거다.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도 한번은 매니저에게 핸드백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것도 내가 이미 매니저들 사이에 돈 안 받는다고 소문난 뒤였는데, 이 매니저는 나이 어린 여자였고, 나에게 핸드백을 주면서 이건 자기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배우의 부모님이 나에게 고맙다고( 그 당시 신인이던 중3 남학생이 일약 스포츠 신문의 인기순위 1위를 몇 주 째 고수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기에 그렇게 만들어준 작가님에게 고맙다는 의미라고 했다) 부모님이 외국 갔다 오면서 사오신 건데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자신은 심부름만 한 거니까 가져갈 수 없다며, 헤어질때 내가 차에서 내리자 밖으로 던져주듯 주고는 차를 타고 가버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 그래..고마워서 준다는데 뭐...'하고 그냥 받고 말자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시작하면 좀 더 큰 돈이나 선물도 받기 시작할 것만 같아서...그날 밤 고민 많이 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돌려주자고.
그런데 그걸 돌려줄 기회가 참 마땅히 생기지 않아서 고민하던 차에
다음 회 대본을 써야할 상황이었고, 그 간 매니저들에게 말했던 일을 실천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 그 배우의 대사를 한 줄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그 매니저에게 돌려주고 미안하다,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이라 어쩔 수 없다..그렇게 말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그 매니저는 이제 일을 관뒀단다.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그 핸드백은 정장을 잘 입지 않았던 나에게는 전혀 필요도 없는 것이었고(요즘 말하는 소위 명품 브랜드였는데 난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이 명품인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쳐다보자니 께름직하고 그냥 누군가를 줘버렸다.
하지만 결국 당사자에게 돌려주지는 못한 것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찜찜한 일로 내게 남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후에는 아무도 내게 선물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소문이 돈 것 같았다.
나도 남들도 살다보면 조금씩 죄를 짓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일을 부끄러워 하고,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당당하다고 진실로 생각하는 세상이라면 조금은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그 피디 사건도 명확하게 죄를 묻되, 더욱 중요한 것은앞으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런 일이 해서는 안될, 부끄러운 일임을 당연히 여길 수 있는 방송국 내의 풍토를 만들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나도 하늘을 보며 희망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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