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와 개
바그다드에서 지낸 이야기, 본대로 겪은대로 적어야지 적어야지 하면서 그리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그 안에 있을 때 촛불 켜 놓고 방공호 안에서, 식당에 앉아서, 미군 탱크 앞에 앉아 일인 시위를 하면서 틈틈히 적어 놓았어요. 요즘 암만에서는 긴급 구호 준비를 하느라 그런 기록 작업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언제, 나중에 잘 할 게요.
먼저 찍어온 사진 몇 장 보냅니다.
첫 번째 사진 - 미군이 막 들어오던 날. 쉐라톤에 조기자님을 만나러 갔다가 미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 팔레스타인 앞에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다가 알파나로 돌아오니, 바로 우리 숙소를 보고 탱크가 서 있었어요. 숙소 2층에는 아이피티 회원들입니다.
두 번째 - 미군이 들어오고, 알 파나 앞에는 미군 탱크와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최병수 선생님이 그린 걸개를 탱크 앞에 깔고 그 앞에서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했어요. 미군은 그 그림을 궁금해하며 그 앞으로 오곤 했지요. 자연스레 그 그림 위는 미군과 우리 평화활동가 사이의 이야기 자리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 개들이에요. 같은 날, 미군 탱크가 점령하고 들어오던 날, 길가의 누런 개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개라면 다 좋아하거든요. 녀석들도 갈 곳을 잃고 아주 불안해했습니다.
네번째 - 하산 사진이에요. 바그다드에 들어가 사흘 째 되던 날 하산을 만났고, 다음 날 호텔 앞으로 와 달라 하여 우리 비상 식량과 물을 챙겨 주었습니다. 참이슬 상자는 술이 아니고 통조림을 담은 거예요.
그리고 미군이 들어온 뒤, 다시 만난 하산. 예전 구두닦이 하산은, 자기가 이 다음에 크면 어메리카와 싸우겠다던 하산은, 이제 구두를 닦지 않아요. 대신 담배를 들고 다니며 미군들에게 담배를 팝니다.
하루, 쉐라톤 호텔로 가는 길이었어요. 어두운 저녁이었는데 하산이 있었어요. 보도를 보아 아시겠지만 지금 팔레스타인 호텔과 쉐라톤 주변에는 미군들이 진을 치고 있거든요. 내가 하산! 하며 반갑게 부르며 다가가니까 하산과 나란히 앉아 있던 미군이 그러대요. 아는 아이냐고. 그래서 그랬죠. 맞다고 내 친구라고.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하산이 어젯밤 거기에서 잤다는 거예요. 호텔 앞 꽃과 나무를 심어 놓은 화단에서.
하산은 아버지 어머니가 떠났다고 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바스라로 떠나고 홀로 남았다고 했습니다. 하산은 모든 게 끝이라고 집도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산은 여느 때처럼 눈빛이 똘망했고 얼굴이 밝았어요. 하산에게 내 방에 가서 자자고 했더니 싫대요. 자기는 거기에서 잘 거래요. 안 된다고, 추워서 안 된다고 내 방에 가서 자자고 하니까, 계속 싫대요. 그러더니 자기는 안 잘 거래요. 그러면서 하산은 바이, 씨유 하면서 총총 걸음으로 달아났습니다. 하산은 걱정 안 해요. 하산은 잘 지낼 거예요. 아주 씩씩한 녀석이에요.
다섯번 째 - 카심과 만나서
바그다드 들어간 이튿날 째 (4/3). 예전에 받아 놓은 카심의 아랍어 집 주소를 가지고 택시 기사에게 부탁해 집을 찾았습니다. 살아있구나 카심 아저씨..... 카심도, 하이다르도, 하산과 세이프도 모두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들어온 뒤에도 택시 기사 모하마드 아저씨에게 부탁해 맨 처음 간 곳이 카심과 하이달의 집이었습니다. 모두 무사이 다치지 않았어요. 아, 하이달의 집 가까이에는 폭탄이 떨어져 아이 넷이.....
여섯 번째 -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미군이 점령한 뒤에는 일부러 걸어서 다녔거든요. 웅성웅성 소리가 나서 그리로 가보니 이라크인 둘이 다쳐 있었어요. 총에 맞아 다쳤어요. 아마 그 친구 되는 사람이 차에 싣고 온 모양인데 이라크 사람의 총에 맞았다고 얘기했어요. 무서웠습니다.
일곱번 째 - 아심이라는 아이에요. 우리 숙소 앞에 걸개를 깔고 일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와서 그림을 봐요. 그래서 내가 이리 오라고, 같이 하자고 했어요. 아심이 자기도 신발을 벗고 올라와 내 옆에 앉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미군 탱크를 맞서 일인 시위를 했어요. 그 그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미사일 둥지 위에 배고픈 아이, 아픈 아이, 죽어가는 아이들이 앉은 그림이잖아요. 그 그림을 한참 들여다 보던 아심이 길가에 구르던 나뭇잎을 들더니 그림의 아이에게 먹이는 시늉을 해요. 제가 보기에도 너무 안쓰러워 무언가를 먹여주고 싶었나 봐요. 아심과 함께 한 일인 시위는 무척 좋았습니다. 아심이 저를 툭툭 치더니 몰래 말해요. 아메리카 이즈 노 굿. 손가락 두개를 펴 가위표를 하면서 말이지요. 잘 보면 아심하고 나하고 생긴 게 닮았어요.
여덟 번째 - 나오던 날. 바그다드에서 요르단으로 나오는 길입니다. 길가 곳곳에는 새카맣게 타다 남은 이라크 탱크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곳곳에 미군이 지키고 서서 여권을 내 보이라 했습니다.
잠깐 주유소에서 내렸을 때 아이피티 회원인 네빌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목사 할아버지. 일흔 세 살. 이라크에 들어온지는 석 달 되었다 했습니다. 손주들이 보고 싶대요. 할아버지가 나에게 서울 사느냐 물어요. 그래서 나는 시골에 산다 했어요. 바닷가 가까운 마을이라고. 그랬더니 할아버지도 시골에 산대요, 바닷가 가까운 마을.....
할아버지가 같이 있어 좋았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