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서
아이들 키가 한 뼘은 자라있었다. 얼굴은 ‘나 이제 3학년 올라가요’라고 써 있는 듯 일 년 전에 만난 앳된 표정들은 사라졌다. 다만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지난 9월초에 약속했던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학년 마무리를 하는 날 나는 아이들을 다시 찾겠다고 약속했었다. 학기 중에 갑자기 명퇴를 하면서 우는 아이들과 영원히 이별할 수 없어 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나는 후임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아이들의 종업식 날 가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아이들은 한 학기를 잘 다니기로 약속했고 나는 그림책을 선물로 가져오기로 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괴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을의 탑골 만화방 주인에게 그림책 만들기를 도와줄 그림 작가와 출판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한다는 내 말에 그는 기꺼이 사람들을 섭외해 주었다. 몇 년 전 그림동화 원고를 써 놨는데 그림 작가와 출판사를 연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아직 무더위가 끝나지 않은 여름에 느린 출판사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책은 아이들 종업식에 맞추어 작업하기로 했고 나의 사연, 즉 아이들과의 약속에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 후 그림 작가를 소개받았고 작업이 마무리 돼 가면서 디자인과 편집을 담당할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림 작가는 목수 일을 하는 남편과 두 딸과 괴산으로 내려와 살고 있고, 디자인을 맡은 아가씨도 괴산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다. 출판을 담당한 사람도 괴산에 자리 잡고 아이를 셋을 낳아 키우며 그림과 출판 일을 하며 지낸다. 이렇게 해서 이번 그림책은 모두 괴산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두 첫 작업으로 만났다. 나도 처음 그림책을 내는 것이고 그림 작가도 그림책에 그림을 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느린사도 출판등록 후 이번 그림책이 첫 출판 책이고 디자인을 하게 된 분도 첫 책 작업인 것이다. 그래서 우린 서로 도우며 일했다. 다 처음이라 더 재미있었다.
어렵게 종업식에 맞춰 발행등록까지 마친 후 막 인쇄되어 배달된 박스를 차에 실고 학교로 갔다. 익숙한 아이들 소리, 교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방해 되지 않게 조용히 2학년 2반 교실로 갔다. 아이들 함성이 한꺼번에 터진다. 순서 없이 말을 하는 아이들을 둘러본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개구쟁이 남자애를 이르기도 한다. 여자애들이 일러버린 남자아이 표정이 더 재미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아이들 모습에 다 드러나 있다.
아이들에게 가지고 간 그림책을 읽어주고 한권씩 선물로 주었다. ‘저자사인?’ 어디서 들었는지 사인을 해달란다. 뭐라 써줄까? 했더니 ‘보고 싶었어! 사랑해!’라고 써달란다. 한명 한명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을 한명씩 안아주고 돌아오려는데 도현이가 자기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내민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제 헤어지면 못 보잖아요? 이거 선생님 드리고 싶어요.”한다.
괜찮다고 말을 해도 집에 똑 같은 게 3개나 있으니 받으라고 한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그거 얘가 맨날 입에 넣었다 뺐다 하는게 제가 봤어요.”
도현이 얼굴이 발게 진다. 나는 ‘니가 주고 싶으면 선생님 목에 걸어주렴’했다. 아이는 웃으며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아이들은 ‘영원히 잊지 않겠단다.’ 내가 준 그림책도 ‘죽을 때까지 간직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주원이는 1학기 때부터 유난히 나를 따르고 자주 안겼던 아이다. 그 아이가 품에 안겨 속삭이는 말이. ‘왜 반에는 선생님이 한명만 있어야 돼요?’라고 한다. 아이들의 생각과 질문이 쿵 하고 와 닿을 때가 있다.
명퇴를 안했어도 지금은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학교 현관에 발령난 교사들 명단이 붙어있다. 학교는 , 아니 사는 일은 이별을 곁에 두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아프게 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이별을 생각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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