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 2학기 인권여행 중에서 위안부라는 주제로 공부를 하고,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가을들살림으로 위안부 여행 기획을 맡았다가 위안부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정이 생겨서 여행을 못 가게 되어 저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역사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슬픈 역사가 더 많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36년 동안 식민지로서 지배를 받았을 때, 10대~ 20대 초반 여성들이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가게 된 것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 제 나이 때쯤에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위안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여성,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 인권여행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일치기 인권여행을 하기 위해 그리고 강의준비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위안부에 대한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위안부란 일본군인을 위해 강제로 성 노예를 해야만 했던 여성들을 말합니다. 오랫동안 정신대라고도 불러왔습니다.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입니다. 일본은 ‘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 취직시켜주겠다, 공부시켜주겠다.’ 라는 말로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끌고 갔습니다. 위안소(전쟁 때 위안부 여성들이 있었던 곳) 에서는 여성들에게 외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일본 이름과 일본어를 쓰게 하였습니다. 제가 몰랐던 부분은 위안부 사이에서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안소에서 들어온 지 한 두 달 되는 여성들은 신품이라 하여 장교들을 상대하게 했습니다. 이 분들이 1등급입니다. 2등급이라 불리는 여성들은 위안소에서 온지 대 여섯 달 되는 여성들이며, 3등급은 그보다 더 오래 있었던 여성들입니다. 그리고 일본 법 (제 177조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13세 이상의 여성을 간음한 자는 강간죄로 다스려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3세 미만의 여성을 간음한 자 역시 강간죄로 다스린다.)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에 이런 법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렇게 법을 만들었는데도 위안부는 당시에 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위안소 사용규정 10개 항목 가운데 일부에는 “본 위안소는 육군과 해군 소속의 군인, 군무원 이외에는 외부인의 입장을 금함. 입장하는 자는 위안소 외출증을 소지할 것. 입장하는 자는 반드시 접수 대에 요금을 지불하고 입장권과 콘돔 한 개를 지불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남성이 여성을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습니다.
1990년 6월 일본정부는 당시 정부가 관여하지 않아서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분노한 한국의 37개의 여성단체는 항의를 담아 일본에게 공개서한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가 이 공개서한에 대해 회답하지 않아서 이에 한국의 37개 여성단체는 1990년 11월에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항의 공개서한을 일본 대사관에 전달하고 항의집회를 열었습니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하셨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하는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할머니들은 일본에게 바라는 7가지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 전쟁 범죄 인정
2. 진상규명
3. 공식사죄
4. 법적 배상
5. 전범자 처벌
6. 역사 교과서에 기록
7.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다시는 이와 같은 범죄가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면 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9년에 전쟁으로 짓밟힌 여성인권을 바로 세우는 역사 교육의 열린 교육관을 세우고, 위안부 역사를 알려내고 있습니다. 볍씨학교 청소년 과정은 이번에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 가서 활동가 분을 만나 강의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때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설명해주실 때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수요집회에 참여 했을 때 평화의 소녀상이 있었는데 저는 소녀상을 보았을 때 의지와 마음이 꿋꿋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위안부를 기억하고 함께하자!!” 라는 생각을 저희에게, 우리 모두에게 얘기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인권여행으로 전보다 위안부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때쯤 끌려가 위안소에서 지낼 때 ‘얼마나 무섭고, 슬프고,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할머니들이 꽃다운 청춘을 전쟁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빨리 일본정부가 이 7가지들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왜 안 할까요?! 세상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갑니다. 저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위안부를 기억하고 함께하려고 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어서 일본이 사죄와, 배상, 범죄인정을 하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