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부터 자유 그리고 다가오는 것들
삶으로부터 자유 그리고 다가오는 것들
  • 양영희
  • 승인 2016.11.10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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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 2016 제작 (2016.11.9.)

다가오는 것들. 이 영화가 던지는 삶의 질문들이다.

‘다가오는 것들’은 포스터를 보고 상상한 사랑영화는 아니었다. 기차역에 여행용 가방을 들고 막 내린 중년여인과 그 여인을 마중 나온 젊은 청년의 모습은 뭔가 말랑말랑한 스토리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아니었다.

나탈리는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자신 있고 유능하다. 아이들에게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끼고, 혼자된 집착이 심한 어머니도 돌보며 산다. 둘이나 되는 아이들은 이미 다 키웠다. 평생 자신을 사랑하고 곁에 있을거라 믿는 남편도 있다.

영화에서 나의 시선을 끈 한 부분은 프랑스 고등학교 학생들의 데모 장면과 수업장면이었다. 일단 복장과 태도부터 자유스러움이 좋았고 자신들의 사상을 토론과 논쟁을 배우며 키워가고, 나탈리가 아끼던 제자 피비앙처럼 그렇게 다져진 내용들을 삶으로 실천하는 과정이 돋보였다. 그런 장면은 영화라기 보단 그 사회의 일면이거라 생각하니 우리 교육현실과 뚜렷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자신의 교재를 직접 출판하여 수업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교육에서의 전문성 문제, 교육의 주체성이나 통제에 대한 문제, 평가권의 문제까지 많은 격차를 확인하며 씁쓸하기도 했다.

영화 제목은 다가오는 것들이지만 실제로 주인공인 나탈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날들이 다가온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딸을 찾는 나탈리의 어머니,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은 나탈리에게 ‘어머니는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강한 책무감’을 갖게 한다. 세상에 나밖엔 돌 볼 사람이 없다는 강박증은 수업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도 거절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남겨둔 채 어머니 집으로 달려가고, 새벽시간이나 휴양지에서도 자신의 일상을 접어둔 채 무조건 어머니에게 달려간다. 목숨을 걸고 자식을 찾는 부모를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머니의 단골메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뒤 얼마 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와 나탈리의 관계를 보며 어디든 불행한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보상을 억지로라도 받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불행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개인문제로 끝이 나지 않고, 가족이나 사회로 연결되고 연장되어 결국은 불행이 확산되어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끝도 없이 나탈리의 삶에 들락거리며 딸의 일상을 흐트러놓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끝내 외로웠고 딸에게는 힘든 존재로 기억되고 만다. 연인처럼 부모자식관계도 예쁘게 매듭짓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 이상 없을 것 같았던 결혼 생활도 남편의 외도로 끝이 난다. 게다가 그녀가 쓴 철학교과서들도 이젠 낡은 취급을 당하고 출판사의 거절을 통고받는다. 필요에 의해 취하고 버리는 것 같은 이런 관계들이 주는 상처를 그녀는 드라이하게 이겨내려 노력한다. 그녀는 마치 철학시간에 논제를 다루듯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풀어간다. 아끼던 제자 파비앙의 대안공동체를 방문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숲으로 가기도 하지만 나탈리는 자신과 다른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맴돌다 돌아온다.

아이들은 품을 떠나고 어머니도 가고, 남편도 떠난 뒤 나탈리는 비로서 자유를 얻었노라 말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어떤 빛깔일까? 우리 삶은 구속을 즐겁게 만들고 힘들어하다 결국 그 구속을 벗어나며 끝나는 것일까? 나탈리에게 다가온 자유가 공허로 가득하지 않았으면 하며 영화를 보았다.

마치 내 이야기 중 어느 부분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영화를 봤다. 나이 든다는 것은 뭘까? 노인이 되어 죽음에 다가가는 것은 뭘까? 결국 가족이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금 내게 다가오는 것들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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