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바야흐로 창업의 시대다. 중앙과 지방정부 모두 가릴 것 없이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장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SNS에서는 성공한 20대 CEO들의 인터뷰가 돌아다니고, 일부 언론에서는 아예 지면의 한 페이지를 ‘창업’ 관련 기사들로 도배한다. 대학에서도 창업관련 과목들이 대거 신설되었다. 심지어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의 본보기를 제시한다는 카이스트조차 창업 맞춤형 학?석사 통합과정을 개설하여 논문을 쓰지 않고 창업만으로도 졸업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왜 창업이 대세가 되었나?
표면적인 원인은 높은 청년실업률이다. 지난 4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10.9%로 매달 사상 최고를 갱신하고 있으며, 체감실업률은 34%에까지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숫자를 떠나 20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인문계의 90%는 논다는 ‘인구론’ 등의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지금의 청년세대는 사상 최악의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졸업 후 생계를 꾸리기 위한 소득 확보가 불안정해지면서 청년층의 일상이 위태로워졌다.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는 ‘칠포세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정을 꾸리기도, 아이를 낳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저출산 ?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져 2019년에는 ‘인구절벽’ 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층이 변변한 소비력을 갖추지 못하자 경제의 활력도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빈곤 청년이 늘어나면서 생계형 범죄에서 차지하는 청년층의 비중도 늘어났다. 청년세대의 구직난이 사회전반의 불안정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이다.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거나 민간(시장)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고, 그것이 바로 기획재정부, 중소기업청, 교육부, 고용노동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여러 부처가 수천억 원의 예산으로 대거 참여하는 ‘청년창업 지원’ 정책으로 표출되었다. 혁신적 사고를 가진 청년들이 창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내용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상 구직의 책임을 ‘사회적’ 주체인 정부에게서 ‘개인’인 청년에게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으니 당사자인 청년들이 스스로 나서서 직업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실업 대책의 초점은 대출 위주의 초기 자금 지원으로 청년들이 하루라도 빨리 출발선을 벗어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역할에 그친다.
동일한 정책적 기조를 가지고 있던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년들이 위험한 도전을 피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며 청년 실업을 당사자의 문제로 돌렸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라”는 창업 지원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지금의 청년들이 단지 실패가 두려워 몸을 사리는 나약함 때문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결국 지금의 실업난을 개인의 책임을 돌려 공공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보수정권의 정책적 기조의 연장선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실업은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및 고용환경의 심각한 격차, 비정규직의 만연 등 노동시장의 왜곡이 심각하다. 게다가 직장으로부터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안정적인 소득이 확보되지 않는 한, 사회 안전망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고용 안정성과 적당한 수준의 월급, 그리고 안정적인 고용 환경이 제공되는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 오랜 취업 준비기간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반짝 효과를 낼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은 청년 창업자들을 대거 육성하였지만 동시에 우리 경제의 불안정성을 더 높이고 있다.
창업 지원 정책의 문제
① 생계형 창업자 양산
지금의 상황에서 청년들은 창업을 ‘권유’받는 것이 아니라 ‘강요’당한다. 매년 비좁아지고 있는 ‘좋은 일자리’의 취업문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느니 다양한 지원 방안이 있는 창업에 도전해보는 것이 막막한 생계에 도움이 될 것 같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유독 ‘생계형 창업자’ 가 ‘혁신형 창업자’ 보다 많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20대가 대표자로 등록된 사업체 수가 1년 새 24%나 급증하여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는데, 대부분이 음식점, 카페, 옷가게 등 생계형 창업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급격히 늘어난 만큼 폐업률도 높다. 청년 창업자의 5년 생존률은 16%로 일반 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외식업의 경우 94% 정도가 폐업한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청년 기업의 폐업률이 높은 것도 생계형 창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평균 재창업 횟수가 0.8회에 불과해 한번 실패할 경우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높은 폐업률은 청년창업 지원 정책이 실업률을 반짝 낮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청년실업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② 단기적 성과 중심의 무리한 창업 확대
정부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지금 이 순간 높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급급하면서 창업 지원 정책 역시 단기적 성과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대학과 연계한 사업인 창업선도대학의 예산이 2016년 기준 752억 원인데, 이 창업 지원 예산을 받기 위한 대학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만 받고 자체 예산은 투입하지 않는 대학이 약 40%에 이르고 있으며, 창업 지원을 전담하는 인력도 1~2명에 그치거나 전혀 없는 곳도 태반이다. 심지어 창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학생들에게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문제들은 성과측정지표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고 양적 성과 중심으로 창업선도대학을 선정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또한, 예산이 투입되는 데도 정부의 제대로 된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백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눈먼 돈’이 되어 대학 배불리기에 사용되고 있다. 예산을 따내려는 대학과 빨리 성과를 내려는 정부 사이에서 정작 당사자인 청년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창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③ 기업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
또한,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과의 공동보조이다. 470억 원 수준의 중소기업청 창업 프로그램인 팁스의 운영사를 현대자동차와 포스코, SK 등의 대기업들로 지정하였고, 실제 팁스를 통한 창업자의 31%가 대기업 출신이다. 이밖에도 KT 등 몇몇 대기업들과 공동자금을 조성하여 청년창업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를 통해 대기업들의 경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멘토링, 판로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팁스 운영사 선정 과정에서 벤처창업계가 우려했다시피 정부의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사업을 이익 추구 단체인 대기업이 좌지우지하는 것은 신생기업을 키우겠다는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공익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게다가 창업프로그램의 공동운영을 통해 대기업은 청년 창업자들이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를 별도의 위험부담 없이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기업 간 관계에서 대기업 위주로 부와 자산이 편중되어 있는 양극화 구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청년들을 낭떠러지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
이처럼 정부의 청년창업 지원 정책이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의 청년실업이 노동시장, 더 나아가 사회 구조적으로 발생한 복합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이슈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기존 보수정권의 정책적 기조에 따라 공공의 역할보다는 개인의 책임에 맡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원인은 실제로 실업 상태에 놓인 청년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청년 당사자들은 창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15년 현대경제원의 ‘창업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창업에 관심 있다’라고 응답하는 20대와 30대는 각각 38.4%, 28.6%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이 실시되는 전후를 비교했을 때 창업을 구체적으로 고려해본 적 없다는 비율은 2015년 69.3%로 2년 전에 비해 오히려 1.2%p 상승했다. 정부는 청년들에게 창업을 하라고 등을 떠미는데, 정작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의 이 불안한 사회에서 우리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의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도 있다는 허황된 기대를 심어주는 창업이 아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일상을 살아가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는 괜찮은 일자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패 시 신용불량자가 될 가능성에 대한 대책보다 일단 창업자가 되어 실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초기 자금 지원에 급급한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은 고용절벽에 직면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잘 체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일자리가 없어 암울한 청년세대의 입장에서 청년실업 정책을 재편해야 한다. 물론, 저성장을 겪고 있는 경제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매우 힘든 일이기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창업을 장려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지 청년실업률을 빠른 시일 안에 낮추기 위한 정책으로 제대로 된 안전망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혁신형 창업’이 활성화 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청년창업 지원 정책의 방향을 대출 위주의 단기 성과주의 정책보다는 실패에 대한 공포가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전망 확충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창업 지원 정책에 쏟아 붓고 있는 막대한 예산을 돌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축소, 최저임금의 현실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격차 축소, 노동권 보장을 위해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탈바꿈하면 청년들을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킬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아직 경험이 미숙한 청년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길 기대하기보다는 기존 일자리의 질을 바꾸는 것이 정책적 차원에서 더 쉬운 일일 수도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떠나 사회 전체적인 책임의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창업 지원 정책은 낭떠러지에 홀로 서 있는 청년들에게 저 멀리 보이는 세상이 훨씬 더 좋다고 어서 날아보라고 강요하고 있다. 창의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획일적 교육 속에서 튼튼한 날개를 가진 청년들이 몇 명이나 될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게다가 덜컥 날아올랐다가 힘이 없어 바닥으로 떨어질 경우,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대책은 너무 빈약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그래도 혼자의 힘으로 날아보라고 청년들을 떠미는 것이 정부와 사회의 역할인지, 아니면 손을 잡아끌어 안전한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튼튼한 날개를 가질 때까지 보듬어주고 혹시 떨어지더라도 금방 다시 올라올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맞는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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