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 만화방에 차들이 와 있으면 주말인 거고 도시에서 누군가 드나들면 휴일인지 안다. 얼마 전까지 나도 주말을 알리는 메시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단 며칠 만에 이곳의 눈으로 저곳을 보게 되었다. 처지가 얼마나 다른 관점을 만들어주는지 새삼스럽다. 마을 어른들이 걱정과 환영의 눈빛을 동시에 보낸다. 나의 존재가 잠시 마을의 화제가 되었음을 짐작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잠 못 드는 밤을 벗어나 이른 아침 방문을 열면 새들은 어느새 아침식사로 바쁘다. 절대로 사람은 새들보다 부지런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함을 알게 된다. 눈을 뜨자마자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마스크까지 하고 산에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에 숨이 차오른다. 내 삶에 어떤 경고가 있기 전까지 이른 아침에 걸어본 적이 없다. 요즘은 아침마다 뒷산을 걸으며 새들의 종류가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놈들이 날개 짓과 소리도 얼마나 제각각 개성이 있는지도 들린다. 어떤 새는 소리만 듣는다면 절대 암컷이 반할 것 같지 않은 놈도 있다. 그 새에겐 내가 암컷이 아니어서 다행일 것이다. 산은 눈도 맑게 하고 귀도 맑게 해준다. 힘든 오르막을 땀이 나게 걸으며 새들이라면 쉽게 갈텐데 했더니 함께 걷던 농부가 말한다. 새들은 날기 위해 전 생을 몸을 가볍게 유지하는 고통을 견딘다고. 우리는 잘살기 위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걸까?
굽은 길을 몇 번이나 돌아가면 일출을 볼 수 있는 능선이 나온다. 나의 아침 산행은 거기까지다. 송글 땀이 등줄기까지 베어난다. 고요한 숲길에 산행에 나서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웃마을에 귀촌한 부부가 만나는 일행의 전부다. 탑골 어른들은 이런 산행이 가능한 분이 안 계신다. 모두 무릎이 아픈 노인들뿐이고 바쁜 농사일로 시간을 낼 수도 없는 분들이다. 그렇게 이 깊은 마을의 뒷산은 이방인의 차지가 되었다. 날마다 조금씩 단풍이 짙어지더니 이제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나의 감탄사는 마음으로부터 나오지만 이렇게 예쁜 것들을 혼자만 보는 게 아쉽다. 그러면서도 지금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 아닌 것만 같다. 가끔은 내 삶의 어떤 오류가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나? 하고 멍해지기도 한다. 그동안 단풍은 이렇게 매년 홀로 물들고 졌을 것이다.
오를 땐 호흡이 차고 땀이 흐르던 숲길이 내려올 땐 즐거움으로 가득해진다. 힘들었던 기울기 만큼 가볍고 시원하다. 이 맛에 사람들은 산을 오를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산행을 통해 몸이 회복되는 기운이 느껴진다. 병원의사도 해줄 수 없는 일을 숲이 매일 선물해준다. 다만 나는 거기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