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煽動)
선동(煽動)
  • 김성현
  • 승인 2010.11.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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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성현의 따뜻한 시선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성격으로 볼 때,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보수는 이념보다 이권을 중심으로 모이고, 진보는 이념을 중심으로 모인다. 이권이 있는 곳에서 부패가 생길 수 있다면, 이념을 중심으로 모이는 진보는 서로 이념의 동질성을 확인하려고 하므로 분열의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오늘 한국사회를 볼 때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보수는 부패로도 망하지 않는데, 진보는 그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부패로 지리멸렬하고 있다. 어쩌면 '수구는 선동으로 흥한다'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간직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했던 볼테르의 말을 되돌아보기엔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선동의 수준은 너무 저질이다. 선동에 고급한 게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선동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선동가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를 떠올리게 된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공장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의 지원으로 독일문헌학 박사가 된 그는 다리가 굽어 병역이 면제되었고 패전으로 말미암아 더욱 뜨거워진 민족주의의 열정에 휩싸였으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에 눈뜨게 된 그는 계속 반(反)부르주아적 태도를 지켜나갔다. 천부적으로 달변이었던 그는 이내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SDAP)의 격주간 국가사회주의 잡지의 편집장,베를린 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하고 이후에는 독일 전역을 총괄하는 NSDAP 선전감독관이 되어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들기 위한 신화를 창조했으며, 당의 행사 및 시위의식을 제정하고 정력적인 연설을 행함으로써 독일 대중을 나치즘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괴벨스는 교조주의보다는 효율성을, 원칙보다는 편의를 우선시하는 인물이었다.

전세가 우위에 있을 때는 그의 역할이 그다지 없었으나 전세가 역전되면서 괴벨스는 절정기를 맞게 된다. 비로소 그는 패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선전의 대가로서 진면목을 보일 수 있었다. 유력한 나치 간부들이 벙커와 요새로 숨어버린 한참 뒤에도 괴벨스는 대중 앞에 끊임없이 다가서는 용기를 보였다. 결국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으로 히틀러가 괴벨스를 자기 곁으로 불러들이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심복이 되었고 가족과 동반자살을 하고 만다.

선동을 하는 것은 아주 드물게 가령 전시상황 같은 경우 자국민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순기능을 하는 측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동이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달갑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사실을 사실과 다르게 설명하고 과장하며 속이는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뭔가를 알리려는 시도라는 측면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선동(煽動)은 '어떤 정치적 행동에 참여하도록 말이나 글로 대중의 감정을 부추기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것의 윤리적, 정치적 판단은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동의 현재성은 분명 위험한 일이 되기 십상이다.

성경에도 선동 분위기의 장면이 많이 나온다.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다니던 시기에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플 때, 그리고 힘들 때 괜히 나왔다는 식의 하소연 섞인 선동은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매번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해결책을 요청하곤 했었다. 예수의 무죄함을 알고 석방하고자 유월절 전통을 따라 석방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에도 바라바를 풀어주라며 선동한 세력이 있었다. 결국 대중은 바람직한 선택을 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예수는 처형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도행전 14:2에도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들의 전하는 말씀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자 그것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복음의 전달과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들은 선동이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나타냈던 것이다. 당연히 합리적이지도 옳지도 않은 일이었다. 구구절절 차근히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시도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선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다. 다만 옳으냐를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해야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선동을 일삼는 것은 대중에게, 역사에 대하여 죄를 짓는 일이다. 제대로 판단하는 시각과 경륜을 갖춰야 할 필요를 느낀다.

김성현
san05@paran.com | 010-2611-4471
경기고교평준화시민연대 공동대표 / 참여자치연구소 소장 / 광명여성의전화 지역자치위원장 / 블로그http://blog.daum.net/san05 나무학습상담센터 542-2004 (학습평가, 학습상담, 지능검사, 부모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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