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들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밥집봉사 강현주씨
지난날들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밥집봉사 강현주씨
  • 강찬호
  • 승인 2002.10.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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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집 실무자들과 함께한 강현주씨(왼쪽에서 세번째)>


지난날들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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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운동가로, 시인으로 그리고 지금은 정치인이 된 어떤 분의 시집 제목이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 꿈이 없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꿈이 아니었다 해도
이 다음에 커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래 젊은 한때 나에게도 꿈이 있었지...!”.
우리는 꿈에 희망을 걸기도 하고,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시집 제목처럼 지난날들의 꿈을 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그 꿈에 발목을 잡혀서 사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마음 한 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때가 이르러 조심조심 그것을 열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 만큼 꿈은 매혹적이다.

이번 ‘좋은 사람들’ 릴레이 인터뷰 주자는 바로 후자의 경우 '어딘가'에 해당 되는 분이다.

지난 호 좋은 사람들 주인공이 추천에 고민하는 동안,
기사 마감이 임박해, 부득불 광명만남의 집에 추천을 의뢰했다.
지역 어르신들 밥집 봉사를 담당하고 있는 광명만남의 집 조명선 간사가
내부논의를 거쳐, 올해 5년째 밥집 봉사를 하고 있는 분을 추천했다.


철산3동 13단지에 거주하는 강현주(4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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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임박해 추천을 의뢰했고, 인터뷰 자리가 급하게 마련되었다.
시간도 저녁시간이다. 오후6시.
미안한 마음 가득안고 인터뷰 장소인 광명만남의 집으로 향했다.
1시간 반 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7시쯤 남편과의 약속이 있는데도 시간을 배려해 주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여유가 없어도 여유를 만들고, 그 여유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듯 하다.
내 것만을 고집하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상에,
여유와 배려를 느낄 수 있음은 아직 우리 사회에 숨쉴 공간이 남아 있음이리라.

첫 만남인데,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 만큼 편하게 상황을 만들어 주는 힘이 강현주씨에게 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보통 편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것인데,
오히려 기자가 더 편한 느낌이다.


“이제 겨우 주위를 돌아보고 있다” “매주 금요일은 봉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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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주위를 돌아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사코 자신은 인터뷰 적임자가 아니란다.
광명만남의 집 실무자의 간곡한 권유에 만남의 집을 알리는 셈 치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겸손한 표현이다.
광명에 이사 온 것이 ‘98년도다.
상계동에 살다가, 구로에 1년 살고, 지금의 광명으로 이사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때이다.
결혼하고서 자녀들을 잘 돌보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지금도 자녀들의 교육을 직접 챙긴다.
남편을 잘 내조하는 것도 포함된다.
본인은 적극적인 성격이다. 완벽주의 경향도 있다.
아이들도 자신처럼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한국사회 주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가정을 철저히 돌보면서도, 봉사자의 삶을 살고 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봉사의 날’이다. ‘
98년도 광명으로 이사 오면서 그 삶은 계속되었다.


올해로 5년째인 만남의 집 ‘밥집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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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주위분이 철산성당을 나가고,
성당 분들과 함께 광명만남의 집 밥집 봉사를 하는데, 함께 참여를 희망했다.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봉사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라 대충하다 그만두는 것은 못하기에
만남의 집 밥집 봉사자로서의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 팀별로 운영되는 밥집 봉사팀의 팀장이기도 하다.
십여명의 봉사자들을 관리한다.
새로운 팀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해당 팀의 봉사자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조정하고,
만남의 집 상근 실무자들에게 불만이나 문제점 등을 전달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등 중간관리자로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어렵다고 하는 역할이다.
밥집 봉사활동은 지역 무의탁 어르신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 점심을 챙기는 일이다.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낸다.
배식을 하고 설거지와 뒷정리를 한다.
해당 당번이 되는 주에 팀원들끼리 역할을 배분하고 준비를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늘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70여분, 많게는 100여분 이상이 찾아와 하는 식사이기에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이나,
간혹 찾아드는 젊은 사람들을 볼 때 봉사자들 중에 회의가 찾아드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그 분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맡은 일이기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밥집 봉사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묻자,
“오히려 봉사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 기회가 되고 있다”며 겸손함을 유지한다.
이런 면들 때문에 처음에 만남의 집이 무슨 단체인지도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든 것이 5년째다.

밥집 봉사가 끝나면, 그리고 밥집봉사가 없는 때라도
매주 금요일이면 광명동과 소하동을 찾는다.
밥집 봉사 외에도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터에
광명장애인복지관을 통해 정신박야 지체장애인 두 가정을 소개받았다.
아이들 점심을 챙기기도 하고, 청소도 해주고, 말 벗도 해준다.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는 박스공장에 다니며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는 가정이다.
초등학생 나이의 장애아가 있는데,
주 중엔 장애인복지관에서 보호가 가능하지만 주말엔 공백이 생긴다.
하마터면 앵벌이로 끌려 갈 뻔한 경우가 있어서
아버지는 주말이면 바깥문을 잠그고 나간다고 한다.
이런 형편이면 언제든 위험에 노출돼있다.
주중에 한 번 방문이지만, 어머니의 부재와 동시에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다른 가정은 신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있다.
이 가정 역시 아버지만 있는데, 아버지는운전일을 한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이 아이의 투석을 해주어야 한다.
이 아이의 경우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운전일을 활용, 지역 도시락배달 서비스 일을 하기도 한다.
조를 짜서 주2회씩 방문한다.

누구나 일주일에 7일의 삶이 주어져 있다.
강현주씨는 그 중에 하루를 쪼갠다.
서양에 비해 자원봉사라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분들을 뭔가 특별함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특별함이 있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생활주변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주위 사람들이 가지는 한 부분이지,
우리와 동 떨어져 별개로 존재하는 특별함이 아니다.
강현주씨의 겸손함과 가정을 우선시하면서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은 바로 그런 면을 부각해준다.
‘가족일이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라며
우리 주변에서 시선을 거두는 사람들에게
한번 더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날 ‘페스탈로치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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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 단짝친구의 권유로 ‘페스탈로치 위인전’을 읽었다.
그리고 밤 세워 울었다.
주위에 어려운 분들을 위해 무언가 해보자고 결심했다.
친한 친구에게 제안해서 통장을 마련하고, 종이를 모으고,
병을 수집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의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통장이 어디에 갔는지 잊어 버렸다”며 웃음을 짖는다.
이런 꿈은 대학때 농촌봉사 활동, 은평천사원 봉사, 봉사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나름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기대 때문에 정작 이루고자 했던 꿈을 접고,
의상 및 가정관리 관련 전공을 선택해 공부를 했다.
졸업 후 자신만의 꿈을 찾아 사회에서 무언가 찾아보고자 고민했지만
이미 때를 놓쳐 망막했다고 한다.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와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에 바쁘게 지내다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가는 때,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어릴적 ‘페스탈로치의 꿈’이 다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학교 전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정주부로서 음식은 잘 할 수 있어 시작한 일이 밥집봉사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삶을 통해서 배운 자녀교육이다.
가정생활 외에 별다른 취미를 갖지 않는 부인을 보고
남편은 “왜 취미 생활을 하지 않느냐?”고 우려를 표하지만,
강현주씨는 봉사의 삶으로 대신하겠다고 한다.
이제 찾아오는 삶의 여유를
어릴 적부터 안고 키워 온 ‘꿈’을 조금씩 실현하면서 살겠다고 한다.

“초등4학년 때인 것 같아요.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너무 많고 사회가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그런 사상이 뭔지도 몰랐지만 나중에 학교에서 배우니까 ‘공산주의’라고 하더군요”.
어려서부터 불쌍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단순히 어린 시절 하나의 책을 만나서라고 단정하기엔,
강현주씨의 마음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주위에 대한 사랑이다.

지금은 남편직장이 있는 가리봉에서 교회에 다니고 있다.
처음엔 목사님에게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
‘신이 왜 세상을 불공평하게 두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은 불공평에 대한 불만보다는 주어진 생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중이라고 한다.
초등 자녀가 다니는 학교일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드러나는 일보다는 보이지 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체육진흥회, 도서관명예교사 자원봉사 등.


‘흐지부지 되는 것은 못 봐주는 편’이라 최선을 다하는 삶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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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좌우명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흐지부지 되는 것은 못 봐주는 편’이라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바깥일에 바빠 집안을 돌보는 일에는 영 잰병인(!)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교육을 챙기고, 자원봉사 날을 지켜가며 광명거주 5년차 강현주씨는
자칭 ‘평범한 아줌마’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탈함과 재미 그리고 꿈을 간직한 우리시대의 멋쟁이 아줌마다.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던 대학생활, 소위 공부 잘 하던 학생들의 모임 소속 멤버이고
거기서 남편을 만나기도 했다는 사실을 농담 삼아 전하던 강현주씨는
“피알(PR) 삼아 꼭 실겠다”는 기자의 말에 기겁을 한다.
“농담이죠. 절대 실지 말라고”.
‘오프더 레코드’(off the record)라고 했던가?
그런데 이런 걸 오프(off)하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거짓도 아닌데.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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