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남편의 구타를 피해 자녀 둘, 반려견 둘과 함께 지낼 곳을 긴급히 문의하는 전화가 동물단체에 걸려왔습니다. 피해자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아이들과 개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의도적으로 유기했습니다. 남편은 아이나 개를 때리는 이유를 나를 때릴 때보다 내가 더 격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정폭력피해 쉼터는 반려동물과 동반입소가 불가능하고, 주인이 있는 반려동물은 정부 보호소에서 받아주지 않아, 결국 동물보호단체에 도움을 호소해왔던 것입니다. 동물보호단체는 이 가족의 반려견을 맡았고, 피해가족은 쉼터로 들어가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개를 많이 죽이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됐고, 살인 욕구를 자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고, 여중생 살인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딸 앞에서 키우던 개 6마리를 둔기로 때려 죽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연구조사가 없으나. 미국이나 유럽 등 동물복지 선진국은 동물학대와 가정폭력 및 강력범죄 사이에 강한 연결이 있음을 다양한 연구조사로 밝히고 있습니다. 1983년 뉴저지 주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아동학대가 확인된 가정 중 88%가 동물에 대한 신체적 학대도 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동물학대 행위자는 아버지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아동도 1/3을 차지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것이자, 폭력의 대물림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심리학이나 상담학 등에서는 이를 훼손된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취하는 극단적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동물학대범에서 출발한 연구도 있습니다. 12년 동안 동물학대로 고발된 268명을 조사해보니, 그중 45%는 살인을, 36%는 가정폭력을, 30%는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동물학대범이 사람을 폭행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5배 더 높다는 연구 결과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2005년부터 FBI의 주도하에 동물학대 전과를 반사회적 범죄의 예측지표로 따로 수집·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가족구성원으로 여겨지는 반려동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 내에서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도, 폭력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연구자는 반려동물이 화풀이 대상, 다른 가족을 통제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하기 위한 수단, 인간폭력을 위한 사전 훈련 등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된 덕분에 폭력에 더 노출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미국, 호주, 이태리 등 대부분의 나라 쉼터연구는 비슷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자신을 학대한 가해자가 동물도 학대했다고 답한 경우가 70%가 넘습니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는 동물학대를 “가정폭력을 암시하는 결정적 징후(golden standard)”로 여깁니다.
우리나라도 여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있는 교내 상담센터에서 위기 청소년 상담에 동물학대를 삽입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정폭력 피해/가해 아동에게 동물학대는 질문되어야 하고, 집단따돌림을 주도하는 그룹과 피해 청소년에게도 동물학대를 주요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유·청소년의 동물 학대는 가해자 피해자 모두가 외치는 '고통의 외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이나 동물학대는 보통 이웃에 의해 목격되고 인지됩니다. 마을활동가들이 둘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주목한다면 더 빨리 폭력을 차단하고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혜란
광명자치대학 반려동물학과장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