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7주년을 맞이했다. 조선은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고, 전국은 일본 수탈의 현장이 되었다. 광명에도 시흥광산(현 광명동굴)이 일제 수탈의 현장으로 남아있다. 나라 잃은 국민들은 일제에 항거하고, 나라를 찾기 위해 피를 흘렸다. 광명은 나라를 찾기 위해 만세운동을 벌인 흔적이 남은 지역이다. 다시는 나라 잃는 치욕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할 일은 기억이다.
광명에는 <광복회 광명시지회>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광명의 만세운동을 기리고, 광명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광명을 무궁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김충한 지회장을 만나보았다.
Q. 광복회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광복회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의 모임인데요. 애국독립지사를 위해 설립한 단체입니다. 광복 1945년을 전후로 이전에 돌아가신 애국지사는 2대 후손, 이후에 돌아가신 분은 자식까지만 인정이 돼요. 전국에 회원이 8천 명 정도 되고요. 광명에는 49명이 있어요.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요. 국회 입법을 통해 더 이후 후손까지 늘리자는 논의가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통과를 시켜주지 않아요. 그러니 10년 정도 후면 광복회가 사라질지 모르겠어요.
Q.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산업유산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시민들이 <은폐된 진실과 기억해야 할 역사> 전시회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전시회는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 착취당했던 현실과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가들과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요. 광복절 77주년 행사의 부속행사인데요. 광명시가 주관이 되고, 광복회가 운영을 하고 있어요.
역사전시가 큰 인기가 있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광복회에서 계속해서 전시회를 하고, 현수막을 걸고, 강연회를 하니 시민들의 반응이 바뀌는 모습이 보여요. 광복회가 꾸준히 움직이니, 시민단체에서도 함께 일을 만들어보자는 연락도 오고요.
올해 광복절 기념식은 8월 15일 광명시민회관에서 가질 텐데요. 올해는 행사 중간에 <안중근> 뮤지컬을 준비했어요. 기념식에 오신 분들에게 독립운동을 알리려고 합니다.
Q.광복회 광명시지회가 꾸준히 시민들에게 일제강점에 대해 알리고, 소통하니 변화가 생기고 있네요. 일제강점기, 시민들이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8월 29일이 나라를 잃은 국치일 입니다. 저는 3.1절이나 8.15광복절 보다 국치일을 더 크게 국민들한테 알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3.1절은 나라를 되찾자는 운동이었었고, 8월 15일은 나라를 되찾은 날이지요. 중요한 것은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생긴 날이라는 거죠. 나라를 빼앗긴 것은 더 참혹한 날이고,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에게 국치일을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를 빼앗기면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되는지 놓치지 않아요. 우리나라 오천 년 역사 중에 9년 동안은 나라가 없었어요. 1910년 나라를 잃고, 1919년 임시정부가 세워지기까지 9년 동안은 나라가 없었던 것이에요.
학교에서 만세운동이나 광복절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지만, 국치일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는 것 같아요.
가슴 아픈 일은 친일 사학자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깎아내리는 일이에요. 일본인의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속국으로만 있어야 살 수 있는 나라다’라는 인식을 일본 사학자들이 심어줬거든요. 그 사학으로 지금까지 가르치는 역사학자들이 있어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조선왕조까지는 잘 배우지만 근현대사는 배움은 부족해요. 조선왕조가 어떻게 망했고, 일본이 어떻게 했고, 그 후 이승만, 박정희 정권 이런 역사는 안 가르쳤다고요.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 했어요.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독립유공자과 함께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면, 독립운동가들의 넋이 편히 잠들 수 있겠어요. 6월 6일이 현충일이잖아요. 그런데 6월 6일에는 숨겨진 것이 있어요.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있었어요. 1948년에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를 만들어 일제에 부역한 사람, 친일 경찰들을 많이 잡았거든요.
그런데 반민특위 안에 공산당이 있다는 명분으로 경찰관들이 반민특위 위원들을 다 잡아가요. 경찰 안에는 친일 경찰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6월 6일이 박민특위를 습격해서 해체 시킨 날이에요. 이 사실을 자꾸 떠들면 이승만 정부가 궁지에 몰리니까,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한 것이지요. 그래서 반민특위가 어떻게 해체되었는지 묻혀버릴 수밖에 없죠.
Q. 광명에도 만세운동이 있었는데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건가요?
1919년 당시 시흥군 서면(현 소하2동)이 큰 동네였어요. 3월 27일에 노온사 경찰관 주재소 근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한거에요.
배재고등학교에 다녔던 최호천, 윤의병 학생 두 분이 계셨어요.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있었잖아요. 학교가 휴교를 하니 두 분이 고향 집, 여기에 내려와 여기 사시는 분들과 만세운동을 하셨나 봐요. 그중 이정석이라는 분이 파출소 주재소에 잡혀가고, 이정석을 구출하기 위해 구조대를 만들어 갔지요. 구조대가 파출소 주재소를 파괴시키고, 만세 운동을 했지요. 결국 일곱 명이 이 년에 걸쳐 재판을 받았는데 징역형을 받았어요. 광명에서 벌인 독립만세운동이 주변지역으로 퍼져나갔어요. 안산, 부천, 과천 이런 곳에 영향을 주었지요.
작년 광명시의회에서 이분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3월 28일을 <광명시 독립유공자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를 만들었어요. 올해 3월 27일 1회 행사를 가졌고요. 당시 재판을 받았던 일곱 분 중에 다섯 분의 후손을 찾았어요. 이분들의 행적을 계속 조사를 하고 책으로 만들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분들이 살던 곳이 재개발에 진행되고 있어서, 집터에다가 애국지사 표지석이라도 하려고 준비하고 있고요.
Q. 광명에 만세운동을 했던 분들을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광명에 독립기념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난해 8월 15일에 제가 시장님께 제안을 했어요. 이런 일은 민관이 함께 해야 해요. 그래서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고 있어요. 가을에 발대식을 하는 것으로 목표하고 있고요. 기념관에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도 중요한데요. 일곱 분의 유품들을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기념관을 통해서 시민들이 광명에 대한 자긍심이 생길 거에요. 광명에 동굴이라는 착취의 현장이 있잖아요. 그리고 독립운동가도 계셨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내 고장에 대한 자긍심이 생길 거에요.
Q. 광명동굴 주변에 무궁화 심기를 하시잖아요. 무궁화를 심는 이유가 있나요?
광명동굴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주변에 벚꽃을 많이 심어 놓았어요. 벚꽃이 봄이 되면 보기가 좋잖아요. 그런데, 광명동굴(구 시흥광산)은 일제 수탈의 현장이고, 아픔의 현장이에요. 아픔의 현장에 벚꽃만 심어져 있으니 눈에 거슬리더라고요. 그래서 무궁화도 좀 심자는 생각을 했어요.
무궁화는 작년과 올해 두 번 심었습니다. 지난해는 광명동굴 동문 쪽에 심었는데 뿌리를 잘 내려 무궁화 꽃이 많이 피었어요. 올해는 서문 소각장 방향, 광물을 캐서 분리하던 산비탈에 심었습니다.
광명시가 무궁화 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무궁화는 7월부터 11월까지 피는데요. 무궁화를 광명시 전역에 심으면 좋겠어요. 한해에 천 그루씩 십년 정도 심으면 무궁화를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광명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궁화를 심을 때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심고 있어요. 시민들이 직접 무궁화를 심으면 관심도 더 가고, 광명에 대한 애착심도 생기겠지요. 자기가 심은 나무에 꽃이 잘피는지 관심있게 보시더라고요.
김충한 광복회 광명시지회 지회장가 인터뷰를 하면서 대한민국과 광명시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 지회장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충한 지회장이 일제 강점기 부터 내려온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일제 역사관에서 벗어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는 깊은 힘이 느껴졌다. 광명에서 벌어졌던 일제의 자원과 노동력 수탈 현장과 저항하며 독립을 향한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는 김충한 지회장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