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의 오월
(기고) 나의 5월
나의 5월은 뒤죽박죽입니다. 5월 18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5.18 23주년기념식장에 들어가려는 노무현 대통령을 가로막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만큼이나 나의 5월은 어수선해요. 5일은 어린이 날,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에 어버이 날, 15일은 스승의 날, 거기에 5.18. 세기조차 숨이 가쁩니다. 아직 5월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어린이 날은 아이들과 광주지역 공부방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운동회에 가서 놀고 부처님 오신 날은 해마다 가던 절도 가지 않고 (책방에서)일을 했지요. 물론 부모님이 계신 시골은 아이들과 아내가 다녀왔습니다. 어린이 날은 왜 있는지, 어버이 날은 무얼라고 있고, 스승의 날은 또 뭐고, 부처님 오신 날은 무언지. 언제부턴가 무슨 날 무슨 날 하면 짜증부터 나는 거예요. 괜히 주눅도 들고.
14일이었어요. 내가 일하고 있는 책방에 유난히 월간지 ‘좋은생각’을 찾는 이들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그책을 찾는 두어 사람과 한두마디 나누었어요. 오늘따라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내일이 스승의 날이 잖아요. 그런데 왜? 아이 선생님께 봉투를 드릴려는데 봉투만 주기 뭐해서.... 그 사람들은 왜 이런 날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렇다고 안 줄 수도 없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서너날 뒤 책방일을 마치고 몇사람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문제가 있긴 하지만 뭐 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게 요즈음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개혁신당문제와 노대통령이 미국방문때 쏟아놓은 말에 관련한 시시비비를 논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노무현씨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조금 두고 보자고 뭔가 큰 뜻이 있는 거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래, 그래보지’하는 분위기인 듯 했어요.
오늘 19일. 영호남 종교인 평화회의가 있는 금호리조트엘 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데 어느새 이야기는 5.18기념행사관련 이야기와 대통령 방미에 관한 이야기로 초점이 모아졌어요. 신기한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자고 한 사람이 없는데 너도나도 달려들어 한 사건에 대해 그렇듯 열정적으로 말들을 쏟아내다니.
입을 모아 말했어요. 한총련학생들이 잘해부렀다고. 이런 때 그 학생들이 아니면 누가 그런 말을 하겠냐고. 꼭 그날 그렇게 해야만 하는거냐?조금은 표형양식을 달리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쉬워는 했지만 잘한 일이라고 말했어요.
노무현씨가 잘해야 되겠습니다. 엊그제 분위기와 사뭇 달랐어요. 욕도 막 했습니다. 분노를 삭이고 있음이 느껴졌어요. 노무현의 진정성이 근본부터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랬어요. 그런 말도 했습니다. 올해는 참 이상스런 해다고. 마치 80년 5월과 같은 열기가 솟구치는 것 같다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권력(노무현)이 역사(5월항쟁)를 왜곡하면 용납할 수 없다는 결연함이 스며 있었어요.
5월이면 누굴 만나도 좋고 날마다 좋은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일부/ 광주, 풍경소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