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로 세상읽기]아프칸 전쟁의 교훈, 부도(不道)면 조이(早已)라.
20년을 끌어오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의 주범으로 알 카에다(Al-Queda))와 그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간 탈레반 정부가 그들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미국에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하였죠. 하지만 탈레반 정부는 그들의 인도를 거부하였고, 이에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들이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 해 10월 7일부터 시작된 미군과 영국군의 합동 공격으로 아프간 정부는 대부분의 공군기지와 지휘본부, 방공망과 방송시설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탈레반은 빈 라덴을 인도하지 않고, 항쟁 의지를 밝히며 성전(聖戰: 지하드)을 촉구하였습니다.
탈레반 정권은 막강한 연합군의 군사력을 견디지 못하고 2001년 11월 무너집니다. 미국은 여러 정파가 참여한 임시정부를 구성하였고, 탈레반은 파키스탄과의 접경지역으로 도피하였습니다.
이후 탈레반은 지속적인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세력을 확대했고, 2021년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내전 승리를 공식 선언합니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은 예상외로 빨리 이뤄졌습니다. 2021년 5월 아프간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시작된 지 3개월만이자, 탈레반이 주요 거점 도시들을 장악한 지 불과 10일만입니다.
탈레반의 정권 재장악은 2001년 11월 3일 미군과 아프간 연합군에 의해 정권을 잃은 때로부터 무려 20년 만입니다. 이로써 20년간 이어지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됐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패배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군 철수를 발표하면서 “아프간 군조차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고 죽어선 안 된다”면서 “아프간 전을 치르는 네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서 종료 결정을 다섯 번째 대통령에게 전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마치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미국우선주의)에 따른 자발적 철군처럼 묘사했지만,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시인한 것이나 다름 없는 말입니다.
한편, 탈레반의 카불 장악을 앞두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2천억 원을 챙겨 인근 타슈켄트공화국으로 도주하였습니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자 카불공항에는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면서 엄청난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특히 활주로로 몰려든 수많은 인파를 해산시키기 위한 미군 측의 발포로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참변이 이어졌죠. 여기에 미국 등 각국 대사관들이 카불에서 속속 철수한 가운데, 조 바이든은 미 대사관 등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5천 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습니다. 카불의 한국대사관도 8월 15일 잠정 폐쇄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 지역의 제3국으로 철수시켰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년 동안, 아프간 전쟁에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1조 달러면 우리 돈으로 1,170조 원입니다. 하지만 미국 브라운대학교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Costs of War Project) 통계에 의하면 2조 2,6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653조 원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도 어마어마 합니다. 미국과 아프간 군인, 민간인을 합쳐 17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방측도 8천여 명이 희생되었는데 미군은 2500명이 죽었습니다.
미군의 철수로 탈레반은 정부군이 가진 첨단 무기들을 손에 넣게 되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미국은 20년 동안 97조 원 상당의 무기 등 군사자산을 정부군에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은 모두를 용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이미 반(反) 탈레반 세력과 서방측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숙청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거센 적개심과 보복이 자리합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끝났지만, 아프간의 '아프간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유입니다.
미국이 패배한 전쟁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1975년의 베트남 전쟁입니다. 이 둘은 매우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이 천문학적인 돈과 신무기 등을 투입했지만 결국 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입니다. 과연 목숨 바쳐 지켜야 할 만한 가치가 국민들 속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쿠데타나 부정선거를 통한 집권한 정권, 소수 부족이나 계층을 대변하는 부패한 정부는 그들만의 정권이지 국민의 정부가 아닌 것입니다. 남베트남이나 아프간 정부는 국민이 아닌, 미국이 원하는 정부였습니다. 미국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하다 보니 자생 능력이나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외부 지원이 없으면 조그만 충격에도 무너지죠. 남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은 정부 정통성이 없다는 점에서 일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군의 부패입니다. 군 고위층이 타락하였고 사병들은 싸울 의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노자 30장에는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난다(不道早已)”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존재)은 장성한즉 늙게 되니 이를 일컬어 도에 어긋난다고 하거니와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나게 된다(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는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아무리 강성한 나라도 종래는 쇠약해지고 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대한 로마제국도 칭키스칸의 몽골제국도, 스페인이나 대영제국도 그런 운명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것은 무모한 욕심과 과도한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도로서 임금을 돕는 자는 군대를 강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리게끔 하지 않으니 그 일은 마땅히 되 갚음을 당하기 때문(以道 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칼로서 흥하는 자는 결국 칼로서 망하게 된다는 것이 기사호환(其事好還)의 이치입니다. 소위 군대로 천하를 움켜쥐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인 것이죠.
중국 은나라의 제후성이었던 서기가 주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은나라를 무너뜨립니다. 그 과정에서 유명한 재상 강태공이 활약하죠.
당시 은(殷)나라의 폭군 주(紂)왕은 달기라는 후궁의 치마폭에 싸여 주지육림을 헤매고 있어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진 신하들은 간신배들의 모략에 하나둘씩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을 가게 되고 탐관오리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 자신들의 영화를 누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은나라의 막강한 군대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원성을 짓누르는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주나라는 이런 백성들의 울분과 원한을 먹고 자라나게 되었고 천명(天命, 백성들의 뜻)에 따라 은나라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은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결코 선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군사를 일으켰던 곳에는 언제나 가시덤불과 엉겅퀴만 무성합니다. 형극(荊棘)의 땅이 되는 것이죠. 노자는 군대가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고 말합니다.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젊은 남자들은 군인으로 징발되고 나이 든 남자들도 보급품을 나르는 일꾼으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효과적인 생산을 할 수 없는 조건이 되어버리죠. 더군다나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그나마 있는 것들도 모두 공출됩니다. 그래서 후방은 전쟁터보다 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땅이 되고 맙니다.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내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79년부터 10년간은 소련과의 전쟁에 시달렸고, 2001년부터 20년간은 미국과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사이 사이에도 내전은 끊임이 없었죠. 백성들은 끔찍한 전쟁의 볼모가 되어 지옥도를 살아야 했습니다. 외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를 침략하거나 반군을 지원하여 내전을 일으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전쟁 범죄인데도 여러 구실을 만들어 정당화했습니다.
이제 전쟁이 끝났다 하더라도 탈레반 정부가 어떻게 백성들을 통합해 나갈 것이냐는 과제가 있습니다. 서방세계는 벌써 여성에 대한 인권 차별, 서방측 조력자들에 대한 숙청 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탈레반 정부가 합법정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처럼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과 싸워 이긴 아프간 민중들은 이제 자신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먼저 자국민들 끼리의 싸움을 멈추고 통합을 위해 포용적 자세로 국가를 운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서도 벗어나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적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주 국가로 번영을 누리며 오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난다는 노자의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부도(不道)는 조이(早已)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