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주주의, 그리고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서평]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박홍규/홍성사

2017-06-22     양영희(교육잡지 벗 이사, 민들레 편집위원)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인간다운 사회의 모습은 어떤 걸까?
바람직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는 무엇일까?

인간의 고민은 아주 깊고 다양한 것 같지만 실은 그 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인디언의 삶과 철학, 역사를 잘못 안내한 그동안의 정보와 교육들을 버리고 수정하는 일을 계속했다. 저자가 안내한 인디언의 민주주의는 가장 인간다운 사회의 원형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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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 대한 기록 중 일관된 주제는 인디언의 자유와 평등 특히 국가와 지배자로부터의 자유와 평등, 남녀의 평등이다. 500년 전 인디언을 본 유럽인들은 인간이 왕의 통치를 받지 않고,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회적 조화와 번영 속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천지개벽하듯 놀랐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인디언을 보고 씌어졌다.

인디언이 인간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관용이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음식을 기꺼이 주는 마음을 실천했다. 인디언 사상의 핵심은 모든 것이 나의 친족이라는 말이다. 인디언의 친족은 모든 생명과 자연을 말한다. 주민 모두 혈연의 호칭으로 불린다. 우리가 숙부보모와 이모, 이모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모두 부모로 부르고 그 형제도 모두 형제라고 부른다. 이런 사회에 고아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과거를 낡은 것, 미래를 새것이라 구분하지 않고 언제나 흘러가는 현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역사를 발전이나 발달로 보지 않는다. 느림의 삶, 여유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별로 일을 하지 않았어도 굶어죽지 않고 잘 살았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남자들은 일 년에 한두 달 정도 개간에 필요한 중노동을 했을 뿐이고 여자들은 파종이나 제초를 비롯한 나머지 일과 추수를 주로 맡았다. 남자들은 일 년 중 열 달 넘게 사냥과 어로, 놀이와 음주를 즐기고 전쟁이 터지면 전쟁을 하며 살았다. 여성들의 농업노동도 전혀 과중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불필요한 과잉생산을 거부하고 생활에 꼭 필요한 물자의 자급자족과 조화된 생산 활동을 했다. 그들의 과잉생산은 축제나 초대연, 외부인의 방문 등의 기회에 공공으로 소진했지 권력자나 유력자에게도 사적으로 부여되지 않았다.

사내들은 어느 날 어떤 일을 얼마나 할 것인가 아니면 일을 하지 말 것인가를 스스로 정했다. 여자들도 남자들에게 예속되어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혼자 매일 할 일과 속도를 정했다. 그곳에 간부나 감독 우두머리는 없었다. 남녀 누구에게나 자연의 혜택을 평등하게 나누어가질 권리가 있었다. 지대도 세금도 공불도 없었으니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일은 없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관점으로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가진 국가주의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태어났을 때 존재하는 것들은 거부할 수 없는 고정된 것으로 인식한다. 국가나 지도자나 교육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란 것들이 한 번도 의심되지 않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규정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해 원초적 물음을 갖게 한다. 몸부림쳐서 발전했다고 자부해온 우리의 역사가 사실은 인디언이 살았던 아나키 민주주의 보다 훨씬 못한 게 많다는 깨달음을 준다. 오늘날까지 콜럼버스를 위대한 개척자로, 새 땅을 알게 해준 탐험가로 교육하고 기념하지만 인디언의 관점에서 콜럼버스와 유럽인들은 잔인한 침략자였을 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인디언의 삶과 역사를 유린하고 파탄 냈으며 심지어 같은 인디언끼리 총을 겨누게 했는지를 보면 악랄하기 짝이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의 서부영화는 모두 그들의 입장에서 인디언을 원시, 야만, 미개로 깎아내리는 시선에 멈춰있다.

/인디언들은 서양인이 아메리카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지역마다 여러 연방을 만들어 아나키 민주주의를 했다. 언어와 관습 및 전통이 같은 여러 민족이 서로의 분쟁을 최소화하기 우해 연방을 형성하고 지배자 없는 민주주의를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호데노소니 연방, 체로키 연방이 있다. 호데노소니의 다섯 민족은 1142년 연방을 수립했다. 다섯 민족의 지도자들은 평화, 동포애, 단결, 권력의 균형, 모든 사람의 자연권, 자원의 공유, 지도자의 탄핵과 해임절차 등을 상세히 규정하는 117개 조항의 위대한 평화의 법을 만들었다./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는 그들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인류가 여전히 서로를 침략하고 지배하며 다른 한쪽의 희생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는 참담함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돋보인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어떻게 일상에서 실행될 수 있는지, 누구도 다른 사람 위에 있지 않으며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 사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만으로 삶이 풍족할 수 있는지, 누구도 고립되거나 버려지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는지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는 보여주고 있다.

/호데노소니는 모계 사회로 결혼은 본인들의 합의에 따르되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갔다. 재산도 모계로 상속되었고 이혼은 처가 남편의 모포를 집 밖에 내던지는 것으로 성립됐다. 이들의 철학은 모든 생명이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 등이 여러 힘과 정신적 영적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씨족의 아이들은 모계로 연결됐고 씨족의 어머니를 우두머리로 하는 결속력 강한 정치집단을 형성했다. 씨족의 우두머리인 씨족 어머니는 여성들의 투표로 결정됐으며 씨족 어머니는 남성 사절을 대표로 임명하고 그 남성이 씨족 안에서 상담한 뒤 마을 회의에서 현안 문제를 협의하고 민족회의 토의에 참가했다. 호데노소니 여성은 지도자인 남성(아이 적부터 관찰하여 겸손하고 사심 없이 공동체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헌을 몸에 익힌 고결한 인물)을 지명하고 그들이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파면했으며 전쟁을 하기 위해서도 여성의 동의가 필요했다. 남성들의 의류, 무기, 수렵용구외의 모든 가족 재산은 여성이 소유했다. 인디언 여성들은 백인과의 교섭에 나서기도 해서 백인 남성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 서부영화는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강력한 추장이 지배하는 듯 그린다. 그러나 민족장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예직에 불과하여 아무런 권력이 없고 실제로는 사람들이 뽑은 회의가 통치했다. 그들은 화폐가 없고 평등했다./

실제로 15,16세기를 거치며 유럽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여행기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구속-종속-인공의 삶’을 살아온 유럽인들은 새로운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히기도 한다.

‘매매도 없고 나쁜 짓 자체를 모르는 인디언들’이 욕심 없이 자연과 정령에 감사하며 하나 되어 사는 모습은 ‘모어 <유토피아>, 라보에티 <자발적 복종>, 몽테뉴 <에세>,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로저 윌리엄스 <아메리카어의 핵심><피의 교리>, 로크<통치론>, <걸리버 여행기><인디언의 편지>, 존 세비어 <리디어>, 루소 <사회계약론> 등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저자는 미국의 헌법도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직시한다.

인디언의 삶터를 빼앗고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며 영혼까지 강제했으며 울타리를 쳐서 가두어 버린 개척자들은 지금도 전 세계를 기웃거리며 자신들에게 가져다줄 부를 셈하고 있다.

촛불이후 새 정부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물음들에 대해 하나씩 정책과 제도로 답을 주는 중이다. 그 물음들의 답을 찾는 이 순간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를 만난 걸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