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복지국가 혁명의 한 해로
[복지국가칼럼] 탄핵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2017-01-17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한민국 역사에서 2017년의 의미
우리 국민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광화문 촛불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 사건을 계기로 밝혀진 청와대 문건 유출, 권력을 통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불법 모금 등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백남기 농민 살인 진압, 세월호 침몰에 대한 부실 대응, 국정 한국사 교과서 강행, 종군위안부 굴욕 외교, 일방적 THAAD 배치 결정, 한일군사정보호협정 강행 등 국민들의 정서와 배치된 정책 강행과 소통의 부재가 있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기초연금 공약의 후퇴,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 공약 후퇴, 공공산후조리원과 청년수당 등 지방정부에서 시작한 최소한의 청년 지원에 대한 중앙정부의 방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보수 세력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한진해운의 파산과 조선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출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적 무능이 있다. 또,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이 무참하게 깨진 데 대한 국민 생활의 불만과 어려움이 촛불 항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후에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광화문 광장에서 흥분과 자신감이 가득했던 대다수의 시민들이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면 춥고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울해지기 일쑤다. 광화문에서 시민 자유 발언을 하던 그 똑똑한 촛불 소녀는 살인적인 대학 입시 교육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되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국회의 박근혜 탄핵 표결로 공동의 적이 제거된 이후 기득권 보수 세력과 개혁 진보 세력이 분리되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회 탄핵 때까지는 시민사회 및 진보개혁 성향의 야당 축과 새누리당 일부 - 검찰 - 재벌 ? 보수 언론 - 고위 행정 관료 등 기득권 카르텔 축 간에 일정 정도의 연대와 협력이 이루어졌으나 탄핵 이후 이들 양대 세력 간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나면서 대립과 대결이 시작되었다.
탄핵이 가결되자 보수 언론은 다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과 파견을 합법화하는 법을 경제 살리기 5법이라는 이름으로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사설을 쓰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바른정당은 선거 연령 18세 인하를 거부하거나 사드 배치 등에서 입장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 재벌들이 권력의 희생양인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전경련 탈퇴를 선언하는 동안에도 관세청은 특혜성 면세점을 추가 선정했고 기존의 경제 정책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방부의 사드 배치 강행이나 방산청장의 주한 미군 주둔 비용 인상 발언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이런 일련의 정책들이 박근혜-최순실만의 독단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이해관계에 기초한 보수 기득권이라는 배후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런 상황과 증거를 통해 우리는 박근혜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87년 체제가 가지는 한계, 국가 실패, 시장 실패, 사회 실패의 3중주 상태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김동춘, 민주평화포럼 세미나). 그리고 2017년에 이루어질 새로운 정권 교체는 단순히 대통령을 바꾸거나 집권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역동적 복지국가로 바꾸는 것,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살만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기 정부가 당면할 상황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면 6개월 또는 그 이상 앞당겨질 대통령 선거와 2달 동안 숨 가쁘게 대통령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정책 평가를 할 기회도 없이 기표소에 가야하며, 정당들도 주요 공약들을 논쟁할 시간 없이 대통령 공약에 대한 검증과 통합의 과정이 상실된 상태에서 차기 정부가 출범하게 될 것이다. 또 당선된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조율하고 정리할 시간 없이 바로 국정 운영을 시작해야 한다.
최근 황교안의 행보에서 보듯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동안에 자행된 많은 적폐들과 문제점들은 차기 정부 기간 내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특히 북핵 대응 과정,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경협의 일방적 중지 과정에서 악화된 남북관계나 사드 배치 과정에서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 등은 단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진해운의 해체와 거제와 울산의 조선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산업 정책에 대한 무능력과 무책임함은 단순히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전자 상업 등 기존 5대 주력 산업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시기를 놓쳐버린 상황에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경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난망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거기에 이명박근혜 집권 시기동안 지속된 부자감세와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인해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국고는 심각한 재정적자 상태이며 민간은 1,3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로 소비지출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사내 유보금이 누적된 기업들도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므로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의 3주체 중 어느 한 부분도 전망이 밝은 곳이 없다.
이에 더해, 차기 정권은 촛불 시위로 창출된 권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매우 높고, 사회경제 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도 중차대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날로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특단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2년 내로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힘이 없어질 공산이 크다. 단순히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정권 교체나 집권 정당이 바뀌는 정권 교체를 넘어 차기 정부가 실제로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상황을 돌파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정권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실패”가 될 우려가 농후한 위기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활용하기에 따라서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규제완화와 재벌 대기업 퍼주기 정책이 더 이상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작동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되었기에 이제는 지난 20년간 자행된 이런 정책들이 힘을 잃을 것이다. 정치권과 결탁한 재벌들의 실체와 한계를 국민들이 본 이상, 또 다시 ‘낙수효과’를 운운하면서 수출 대기업 중심의 지원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체제가 출범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과 물적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탄핵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 혁명은 국회의 탄핵 가결로 1단계가 완성되었으나 그렇다고 헌재의 탄핵 판결이 혁명의 완성일 수는 없고, 단순히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로 마무리 되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1987년 노태우의 6.29 선언과 같은 보수 기득권 세력의 물 타기 책동은 지속될 것이며, 김영삼의 3당 야합처럼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국민적 요구를 배반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모색될 것이다. 그래서 헌법 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나기 전의 한 두 달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적극적으로 국민의 요구로 정치권을 이끌어 가는 적극적 기다림(active waiting)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은 이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새로운 대선 후보를 옹립하거나 정당을 이합집산 하는 것으로 또 다시 정권 연장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탄핵 이후의 짧은 경선과 조기 대선 등의 향후 전개될 상황에 맞추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헌재 판결 이전에 미리 “좋은 정권 교체”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여건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머뭇거리는 정치권을 깨어 있는 국민들이 이끌고 가야 한다.
첫째, 촛불 혁명에 무임승차 하려는 정치권에 이제는 청구서를 제출하자. 국민들이 만들어 준 현재의 상황을 자신들이 잘 해서 이룬 것으로 착각하는 야당, 분당과 피해자 코스프레로 책임이 없다고 숨고 싶은 여당에게 구체적으로 정치권이 할 일들을 요구하자. 청문회에서 호통을 치는 것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이나 독일까지 찾아가 최순실 일파의 숨겨진 재산을 밝혀내는 것은 국회의원의 역할 중 일부분일 뿐이다.
헌재가 심의하는 앞으로 약 1∼3개월 이내의 기간 동안에 국회는 각 상임위별로 의결하거나 정부와 정책협의회를 통해 추진 및 압박을 가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이 성과를 내야 한다. 지난해 11월 예산 심의 과정에서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국고 지원 증액과 최고세율 구간 증설을 통해 한시적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영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 개정을 통해 누리과정에 대한 국가 책임을 법제화하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진영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의 반대에도 강행했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동”하도록 한 조항을 폐기해야 한다. 우선 건강보험 누적 흑자 20조원을 활용하여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확대하고, 선택진료비 및 병실 차액 해소 등 실질적인 3대 비급여 철폐를 통해 4대 중증질환이 아니라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은 법 개정 없이도 얼마든지 추진이 가능하다.
둘째, 새 정부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새 정부 출범 전에 치우고 가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물론 박근혜-이명박 적폐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민감한 외교 및 국방 현안 이외의 민생 관련 정책들을 박근혜 적폐 청산의 이름으로 야4당의 협력을 요구하고, 상임위별로 역할을 나누어 2달 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한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촛불 시민의 요구를 대변하여 기득권 카르텔의 한계를 드러내는 각종 개혁 입법 요구로 차기 정부의 역할과 위상을 분명히 하도록 하고 각 정당들에게 개혁 입법 경쟁을 요구하자. 재벌 대기업들을 위한 규제완화 중지, 노동3법 개악을 넘어 비정규직 축소와 최저임금 인상,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증세 정책 및 각종 복지 정책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들이 각 상임위별로 개혁 입법을 통해 상호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벌이 입금하면 박근혜가 추진하던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거나 비정규직을 늘리고 파견을 남발하는 등 소위 “경제활성화법”이라는 이름의 노동개악법안을 폐기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것도 각 정당의 노동 정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의 분열로 조성된 한시적 입법의 호기를 잘 활용하면 대선 전에 국민들에게 큰 선물을 줄 수 있고, 탄핵 판결이 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지역구별로 국회의원들에게 유권자들과 함께 하는 “의정 간담회” 개최를 요구해서 개별적으로 공략하자. 각 지역구에서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인 촛불 시민의 요구를 직접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하고,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의정 설명회를 통해 정치권을 압박하자.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나서 박근혜 정부의 쓰레기를 박근혜 정부 기간 내에 치우도록 하고, 새로운 정권이 제대로 출범할 수 있도록 하자. 지역구 의원들에게 박근혜 적폐의 척결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자.
이때 각 지역구별로 벌어지는 의정 설명회에서는 국회의원의 일방적인 연설을 듣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진 개별 시민들의 자유발언처럼 유권자인 지역구민들이 직접 발언을 해보자. 여기서 국회의원은 경청하도록 판을 짜보자. 국민들이 자신이 뽑은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고 개혁 과제를 부여하자.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 계속 표를 받고 싶으면 적폐청산을 제대로 할 것을 요청하고 압박하자.
2017년을 복지국가 혁명의 해로 만들자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국민들은 많이 지치고 힘이 들었다. 마른 땅에 물이 고이고, 고통을 격은 후에 성숙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가 보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자. 2017년 상반기를 슬기롭게 보내면,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87년 이후 형성된 구체제의 한계성이 드러난 이상, 새로운 대한민국의 진보적 국가 운영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간을 분석한 결과, 우리가 내린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 발전 모델은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지난 2010년 무상급식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정치사회적으로 널리 소개된 “복지국가” 정책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 2012년 대선 때 여야의 모든 후보들이 경쟁하던 복지국가 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배신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유용성과 절박성이 검증되고 증폭되었다.
내실 있는 보육 지원 정책과 보편적 아동수당 지급을 통해 아동 인권의 신장과 저출산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초·중등 공교육의 정상화와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다각적으로 해결하고 노동권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여 의료비 걱정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복지와 노후소득 보장 등 복지의 지속적인 확충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로 재벌들의 특혜와 갑질이 사라지고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이 움직이는 나라, ‘증세 없는 복지’가 아니라 ‘당당하게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고 제대로 복지를 받는’ 조세재정 개혁 등이 차기 정부에서 시행해야 할 정책들이고, 이들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될 때 국제적인 경제위기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위기들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국가 정책이다.
심각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면서 청년 실업을 없애고 비정규직을 축소하며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는 방법이 복지국가 정책 외에 있다면 이미 나왔을 것이다. 지금까지 없다면 앞으로 몇 개월 내에 새로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100일 정책’이라는 강도 높은 개혁 정책을 군사작전 하듯 속도감 있게 추진했듯이 촛불 혁명을 이룬 시민들의 뜻을 받아 출범한 새 정부는 이런 복지국가 정책의 적극적 추진을 통해서만 국민의 마음을 모으고 반대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