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동결 속에 방치되는 국민 건강권
정초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근연구원)
2016-08-30 정초원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건강보험료 동결 조치
건강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에서 환자 진료의 대가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건강보험 수가 인상률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지출 규모에 맞춰 결정된다. 같은 달 초순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건강보험 수가의 내년도 인상률을 11년 내 최고치인 2.37%로 확정했다. 이로 인해 내년에 추가로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만 8,134억원이다.
게다가 이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기획재정부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이 2018년부터 적자로 돌아서서 2025년에는 고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7조원의 재정 흑자는 국민건강보험의 3개월 치 진료비 지급액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적립금일 뿐이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대거 늘어나게 될 의료비에 대한 안전판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모든 정황들로 인해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 건강보험료가 큰 폭으로 인상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이것이 합리적 의사결정에 가깝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건강보험료가 동결된 것이다. 건강보험 수가는 대폭 인상되었고 2%대의 낮은 경제성장률과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 및 고령화로 인해 향후 건강보험료 수입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면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의 증가 및 질병 구조의 변화에 따른 만성질환 진료비의 급증으로 인해 지출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17조원 이상의 재정 흑자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건강보험료 동결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대선 공약임에도 아무 ‘성과 없는’ 4대 중증 질환의 보장성
건강보험료 동결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임을 의미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여야지, 왜 하필이면 4대 중증 질환이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던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 질환의 국가 보장’ 공약은 재원 문제 때문에 이미 대폭 후퇴하고 말았다. 그나마 추진 중인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간병비, 상급병실료) 제도의 개선, 4대 중증 질환(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 경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에 발표된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평가’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총 2조2,679억원을 투입하기로 하고, 이 계획에 따라 2013~2014년에 4대 중증 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총 125개 항목을 급여화했다. 그러나 2014년 4대 중증 질환 전체의 보장률은 77.7%로 2012년과 비교해서 변동이 없고, 심지어 암 질환 보장률은 72.6%로 2012년 대비 1.5%포인트 감소했다. 또한, 3대 비급여 중 하나인 선택진료비가 크게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의 4대 중증 질환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4.7%로 2012년 대비 0.9%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왜 이처럼 재정을 투입했지만 그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총체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의료비 부담을 전반적으로 낮출 수 있는 포괄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진료 항목별로 급여를 확대하는 데 있어서 땜질식 접근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처방으로서 비급여의 총체적 관리를 하게 되면 많은 재원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항목별 또는 질환별로 대응하는 소극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접근 방식은 새로운 비급여 항목의 생성으로 이어질 뿐이다. 병원들은 기존의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전환됨으로 인해 수익이 줄어드는 부분을 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귾임 없이 창출했다. 예컨대, 선택진료비의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주사료, 처치 및 수술료, 영상진단 및 방사선치료의 비중이 2013년 8.9%에서 2014년에는 27.9%로 급증하였다. 특히나 건강 상태에 있어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는데도 새로운 비급여 항목들이 생겨난 것은 과잉 진료의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환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병원비가 일정 금액을 초과하면 건강보험공단이 초과분을 전액 부담하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비급여 진료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는 더디다. 2014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3.2%로 전년도에 비해 소폭 상승하였으나 2009년 65%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일부 항목이나 질병에 국한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으니 국민 개개인의 실질적인 의료비 경감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연간 7.2%로 OECD 평균인 2.0%를 훨씬 웃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의료비 중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기준으로 55.9%에 불과해서 OECD 평균인 72.7%보다 18%포인트 정도 낮다.
특히, 입원의 공공재원 비중은 61.6%로, OECD 평균 88.0%에 비해 26.4%포인트 낮고, 외래(치과서비스 제외)의 경우 55.4%로 OECD 평균 79.1%에 비해 23.7%포인트 낮아서 최하위 수준이다. 이로 대해 OECD 역시 한국은 민간영역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특징으로 언급하고 있다. 의료 수요는 높아지는데 보편적 의료보장 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이 의료비 전반을 포괄하지 못하면서 국민의 건강이 시장의 논리에 방치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때문에 위협 받는 국민 건강권
건강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사회적 출신이나 재산의 유무에 따라 차별 받지 않고 누구나 의료 서비스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이런 목적 하에 우리나라에서도 헌법 제36조 제3항에서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강권을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제11조의 평등권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해석하여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의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국가가 보장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헌법에서도 건강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강권은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우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빈곤으로 전락하는 가구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적 의료비(가정 경제의 파탄과 빈곤화를 초래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의료비) 발생 가구는 2011년부터 꾸준히 늘어나 5가구 중 1가구는 의료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빈곤 상태에 있을 확률이 1.423배 높다고 한다. 또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편입 사유 중에서 실직(29%), 수입 감소(22%)에 이어 의료비 지출(18%)이 세 번째 순위를 차지했다. 과다한 의료비 부담이 평범한 가정을 빈곤의 늪으로 밀어버리는 모양새이다.
2013년부터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4대 중증 질환에 한정되어 있어서 해당 질환이 아니면 아무리 의료비가 커도 지원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실제 연간 500만원 이상의 진료비를 지출하는 환자의 47%가 4대 중증 질환 이외의 질환자로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동 사업은 ‘4대 중증 질환 국가 보장’ 공약의 파기 논란이 일자 보장성 강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복권기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금을 이용하여 운영되다 보니 재원조달 또한 불확실한 상황이다.
실제로 2014년에는 전체 예산의 20%에 이르는 120억원이 부족하여 미지급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사업은 올해 말로 종료될 예정이므로 향후 과다한 의료비 부담을 감안하여 보건복지부에서 제도화를 추진 중인데, 결국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활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로 이어진다. ‘2015년 한국 의료패널 심층 분석 보고서’에 나오는 가구들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2008년 71.6%에서 2013년 77%로 증가했고, 가구당 평균 가입 개수는 2013년 현재 4.79개이다. 가구당 월 평균 보험료 역시 대체적으로 증가하여 2013년 288,215원에 이른다. 이처럼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이 높아지면서 민간보험 시장 역시 계속해서 성장하여 세계 6위 수준이다. 그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20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수입 보험료 기준으로 한국 보험시장의 성장률은 4.8%로 글로벌 평균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은 사기업의 성격상 이윤 추구를 본질로 한다. 또한,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에서 운영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보험 회사의 손실은 고스란히 가입자에게 전가된다. 이런 이유로 공공보험보다 보험료 수준은 훨씬 높지만, 국민건강보험의 지급률(보험료 대비 혜택)은 170% 정도인데 비해 실손 의료보험은 50~80% 안팎이다.
이처럼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에 비해 훨씬 불리한 조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점점 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부족’이 주된 이유이다. 공공보험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자 불리하더라도 수 십 만원을 추가로 더 내면서까지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의료보험의 높은 보험료 부담은 저소득층이 가입할 엄두를 못 내게 한다. 고소득층은 더 많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저소득층은 낮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값비싼 민간의료보험료의 장벽에 막혀 의료이용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건강권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기전이다.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방법은 바로 ‘건강보험 하나로’
이처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낮을수록 국민의 건강권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건강권은 사회적 처지나 경제적 부의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보편적 권리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함으로써 국민 건강권을 지켜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급격한 고령화 속에 의료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더 커져갈 것이고 국민의 건강권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이런 상황 속에서 건강보험료를 동결한 것은 장차 국민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17조원 이상의 적립금이 쌓여있지만 향후 급격한 지출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물론, 부과체계의 개편과 국고지원의 법적 준수 등을 통해 추가적인 재정을 마련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되더라도 이것 역시 일정 기간의 재원 보충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가장 올바르고 근본적인 대책은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신속하게 OECD 평균 수준으로 확충하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20% 인상을 통해 국민 1인당 월평균 1만원 정도만 더 내면 보장성 수준을 80%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장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이다. 이를 통해 ‘저부담?저급여’의 현행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로 바꾸어야 한다.
물론,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자는 주장이 당장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반발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미 현재 가구당 평균 28만원씩이나 지출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료의 일부만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리면 될 일이므로 모두에게 이익이다. 게다가 이 방법은 저소득층을 배제시키지도 않는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형평하게 보장할 수 있으니 매우 효과적인 정책인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건강보험 하나로’를 실현하자는 국민적 열망을 모아내기 위해 정치사회적 국민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건강권을 기업의 이윤 추구 대상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단기적 관점에서 건강보험료 동결과 같은 무대책의 천박한 포퓰리즘을 거부하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보편적 의료보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먼저 건강보험료를 더 내겠다는 국민운동으로 결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다. 이 일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함께 전개할 때라야 성공할 수 있고, 이 제도를 자식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