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인 내가 오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오랜 세월 대한민국 교사들은 반 아이들을 불러내어 급식비를 빨리 내라고 독촉하는 쪽지를 부모님께 전달시키거나 직접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미납된 급식비를 내도록 요청하는 통화를 하도록 주문받고 직접 그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될 때마다 교사들은 교직수행의 어려움을 느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 중에 왜 이런 일이 포함돼야 하는지 반문하곤 했습니다. 우유값, 급식비, 수련회비, 현장학습비,,,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마다 행정적 처리와 예산, 특히 학부모들이 내야할 비용들을 체크하는 일까지 점검해야 하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몇개월 혹은 1년 가까이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가 반에 있기도 했는데 학교측의 어려움 호소와 문책성 연락은 그 아이 얼굴을 보면 급식비 미납자란 생각이 먼저 뇌리에 스치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매월 이달의 미납자 명단이 학년에 돌아다니고 수업 중에 쪽지가 오기도 했습니다. 교사가 아이를 불러 왜 급식비를 내지 않는지, 언제까지 내야하는지 얘기하는 장면은 결코 아름답진 않습니다. 미납된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부모의 가난으로 매번 쪽지를 받아야하는 아이의 상처는 어땠을지 누가 생각해봤을까요?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과 국민들은 교실은 신성해야 하고 교육외적인 것들이 들어가거나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풍경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급식비를 못내는 단 한명의 아이가 있더라도 이것은 우리 모두 안고 가야하는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갈수록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급식비를 면제받겠다고 신청하는 수도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를 떠나 기본교육이자 의무교육이라면 교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과 활동들은 국가의 예산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의무교육이지요. 학부모에게 대부분의 비용을 전가시키고 수업료와 교과서 비용, 약간의 학습 준비물만 지급하면 의무교육이 완성되는 걸까요? 혁신학교와 함께 북유럽의 여러 학교 사례가 전파되면서 그 나라들의 교육복지를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 입니다. 양질의 급식은 물론 교통비, 병원비까지도 정부가 책임지더군요.
아이들의 숟가락을 들게 하는 일, 배고프지 않게 돌보고 아프지 않게 돌보는 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도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기본권입니다.
선진국은 인권과 교육에 관한 사항은 정당과 이념을 초월하여 합의하고 협력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 먹는 식탁까지 정치적 논리와 이념이 개입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이 땅의 여러 지역에서 전면 무상급식이 도입되고 있는 마당에 서울시만, 대한민국의 심장이라는 '특별시 서울'에서만 이런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번 선거를 뭐라고 설명할까요? '서울 아이들은 시장의 철학 때문에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한단다' 라고 말을 해야 하나요?
초등학교 1학년도 납득시키기 어려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서울시민들이 표를 던질거라고 판단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장직까지 걸며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시대착오적 태도와 여기에 들어간 막대한 선거비용을 교실에서 질문 받으면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이 공직에 계신 분들을 아이들이 존경하고 닮아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뉴스를 보게 하기도 부끄러운 현실에 갑갑함을 느낍니다.
우리 조상들은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밥상을 차려주며 넉넉한 인심을 나눴습니다. 오죽하면 숟가락하나 더 놓는다는 말까지 있을까요? 그런데 그 숟가락을 기준을 정해 뺏겠다니 전 그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아이들에게 급식비 미납쪽지를 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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