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설레어 잠도 못 잤어요.” “새벽 1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어요. 소풍가는 애들처럼 설레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생애 첫 수학여행을 떠나는 어르신들은 기대감으로 설레는 표정들이었다. 어르신들은 학교 문턱을 넘어 보고 싶은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리고 설렘과 두려움으로 학교 문턱을 넘었다. 그 느낌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생애 첫 ‘수학여행’에 다시 설렜다.
혁신학교인 구름산초등학교와 광명노인종합사회복지관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아름드리학교’ 수학여행이 4월 22일(금), 23일(토) 양일간 진행됐다. 아름드리학교는 이 두 기관이 함께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문해교육 프로그램이다. 수학여행지는 충북 단양. 어르신들의 이동거리를 고려하고, 봄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적정한 곳을 고려해서 노인복지관에서 선정한 곳이다.
출발 당일 촉촉하게 봄비가 내렸다. 꽃놀이를 즐기기에는 걸림돌이건만 어르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어때. 오면 오는 대로 즐기면 되지.” 벅찬 생애 첫 여행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만학의 즐거움은 ‘여행’ 그 자체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박2일’의 강행군 일정에 어르신들은 꿈적하지 않았다. 동료애를 발휘했고, 맘껏 여행 일정을 즐겼다. 어디에서 오는 힘일까. 그리고 그 근원을 추측할 수 있었다.
수학여행 차량은 9시30분 소하동 노인복지관에서 출발했다. 출발 전 간단한 환송행사가 진행됐다. 구름산초 장재성 교장과 노인복지관 서은경 관장은 안전한 여행과 우정을 나누고 오라며 격려했다. 국민은행 철산지점의 후원금 전달 행사도 진행됐다. 짧은 출발행사를 마치고 수학여행지로 향했다. 이동 내내 어르신들은 춤과 노래를 즐겼다. 몸에 베인 그대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개별적으로 싸온 간식을 나누기도 했다. 세 시간의 이동 시간이 짧게 느껴졌던 것은 이런 어르신들의 ‘흥’ 때문이었다.
목적지에 들러 올갱이 정식을 먹고 도담삼봉의 경치와 충주호 유람선 관광을 즐겼다. 이어 사선암의 운치를 즐기고 다리안관광지 숙소로 이동했다. 점심이 현지 음식이었다면, 저녁은 준비된 만찬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복지관 직원들과 구름초 교사들이 직접 팔을 걷고 고기를 구웠고 저녁을 준비했다.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대로 집에서 싸온 반찬을 꺼냈고 저녁 차림을 도왔다. 그렇게 저녁은 함께 준비한 ‘어울림 밥상’이었다. 그 맛이란! 한담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저녁 식사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준비된 저녁 프로그램. 친목을 위한 조별 게임이 진행됐다. 조별게임을 통해 하루 일과를 더듬었고, 또 동료들과 웃었다.
이어 수학여행 첫 날을 마무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어르신들은 차례대로 자신들의 손에 든 초에 불을 밝히면서, 왜 자신들이 배움의 시기를 놓치게 되었는지 사연을 들려줬다. 그리고 노인복지관 한글교실과 아름드리학교를 다니면서 느끼는 감회를 솔직하게 전달했다. 참석한 모든 이들은 그 사연 하나하나에 눈시울을 젖히며 지나 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운 살림 형편으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사연에서부터, 여자로 태어나서 ‘공부 밖’으로 밀려나야 했던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절절하지 않은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칠순,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더 늦기 전에 한글을 배우며 공부를 해야겠다고 용기를 냈고, 지금은 그 후회 없는 선택에 더 없이 감사하고 있다. 학교 문턱을 넘은 것도 믿기지 않은데, 생애 첫 수학여행이라니. 아름드리학교에서 배운 것을 듣자마자 잊어버리더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졸업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배움에 대한 ‘한’과 ‘기쁨’이 교차하고 있다. 그리고 배움의 길을 열어준 학교와 복지관에 대한 고마움이 같이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소망과 기쁨을 촛불에 담아 아름드리학교에 모았다. 초를 한 곳에 모아 꼽으니 하트 모양이다. 함께 촛불을 끄고 사랑으로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첫날 공식일정을 마쳤다. 그리고 어느 수학여행처럼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담소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한편 아름드리학교 자원활동을 하는 구름산초 교사들과 노인복지관 담당 직원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생애 첫 수학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또 어르신들을 위한 향후 일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들을 나눴다. 이날 수학여행이 가능하기까지 공모사업 신청을 하고, 또 후원과 협찬을 만들어낸 이야기. 더 나은 수학여행이 되기 위한 평가와 어르신들 저마다의 사연에 대한 공감까지.
그렇게 밤은 깊어 갔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르신들의 새벽 활동 소리가 들렸다. 새벽과 함께 몇몇 어르신들은 숙소 주변에서 봄나물을 채취했고, 어떤 어르신들은 산책을 하며 소백산 기슭의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이어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서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일행은 다리안관광지를 벗어나 단양 시내를 끼고 도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 이동하며 온달관광지에 도착했다. 봄비는 개어 차창 밖의 풍경은 한껏 운치를 더했다. 온달관광지에서 온달동굴 등 주변을 둘러보며 마저 휴식과 경치를 즐겼다. 오전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1박2일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강행군에도 어르신들은 지치지 않았다. 단양을 벗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난 차 안. 어르신들은 다시 춤을 추며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주말임에도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계획된 시간에 노인복지관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름드리수학여행은 짧지만 강하게 ‘생애 첫 수학여행’으로 어르신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