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에 갇혀진 키 작은 엄마
울타리에 갇혀진 키 작은 엄마
  • 조경숙(연세언어치료연구소장)
  • 승인 2011.04.25 00: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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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의 언어치료 이야기

바쁘게 지내는 가운데 분당에 있는 S대학병원에서 열리는 학술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었다. 지하철이 있어서 웬만한 곳은 몇 십여 분 만에 닿을 수 있지만 분당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마침 직장동료였던 친구가 분당에 살고 있어서 핑계 김에 친구의 집에도 들러 ‘마실’을 하기로 했다.

만나지 못 하는 사이 이사를 간 친구는 낯선 동네에서 나와 딸아이를 맞이했다. 친구의 집은 40여평 정도 되는 꽤나 넓은 집이었다. 각각 7살, 4살인 아들과 딸을 위해 옷방 하나, 놀이방 하나를 따로 쓰고 있었다. 내심 나는 ‘형편에 맞게 살지 이렇게까지 넓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의 딸은 아이들을 데리고 무척 즐겁게 놀아주었다. 워낙 평소에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나이에 아랑곳없이 잘 어울리고 있었다.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신나게 놀던 네 살배기는 갑자기 큰 소리로 울며 친구에게 안겨왔다. 친구는 “왜 그래? 언니 오빠랑 잘 놀았잖아~”라며 달래려고 했다. 아이는 엉엉 울며 “둘이서 하는 거야~.”라며 그칠 기세고 보이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영문을 몰라 아이를 바라보며 무슨 일인지 알려고 애썼다. 아이가 들고 있는 것은 ‘꼬꼬미노’라는 보드게임이었는데 지난 번 친구를 만났을 때 내가 선물한 것이었다. 원래 정해진 규칙은 어려우니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하라고 일러주었는데, 그럼에도 네 살 배기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한참을 큰 소리로 울며 “둘이서 하는 거야아~. 셋이서 하는 거 아니야아~”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스티커로 시장놀이를 하기로 한 뒤 겨우겨우 달랠 수 있었다.

아이는 울며불며 친구에게 매달리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친구의 모습에서 나는 물음표를 달았다. 음? 내가 아이를 달래는 것과는 분명히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임상심리사인 친구나 언어치료사인 나나 아이들의 발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전문가인데 전혀 다르게 대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음~, 이럴 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아?”라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려가며 쉬엄쉬엄 질문 하고 있었다. 아이는 대답은커녕 울기만 했다. 어찌 됐든 친구는 긴 울음을 달래기는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쟤, 왜 저래? 네 살한테 어떻게 라니?’ 한편, 이렇게도 생각했다. ‘흠... 친구는 네 살배기에게 자기 생각을 유도하는구나. 나는 초등 1학년인 딸아이에게도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데...’

그랬다. 한국 나이로 네 살이면 아직 모국어 체계나 언어적 사고력이 충분히 완성되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언어화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언어병리학적인 관점에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개방형 질문’을 되도록 제한하기도 한다. ‘개방형 질문’이란 ‘무엇, 왜, 어떻게...’와 같은 질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뭐 하면서 놀았니?”와 같은 질문인데 이런 질문은 아이에게 어휘, 구문, 문법 형태소, 발음, 상황적 이해의 지식을 바탕으로 답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대답에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말을 더듬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린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되도록 ‘폐쇄형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네/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도 블록 쌓기 하고 놀았니?”처럼 아이가 “네”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말한다. 또 하나 대화 상대에게 질문을 하는 건 개방형이건 폐쇄형이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의 의사소통 의도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이 몸에 밴 나로서는 초등학생인 딸아이에게 질문을 잘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생각이 있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아이에게 여간해서는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그저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속이 많이 상했구나.” 혹은 “다음부터는 그럴 땐 혼자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엄마와 의논하는 게 좋을까?” 하는 식이었다. 친구가 딸을 대하는 태도에서 딸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편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아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태도가 몸에 베인 친구 역시 네 살배기 아이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는 적당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친구처럼 임상심리사로 일하는 다른 어떤 분은 동생이 따지더란다. ‘왜, 어떻게’와 같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내가 어린 아이냐’ 혹은 ‘누굴 가르치려 드느냐’며 불쾌감을 표현한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전문가라 해도 자신의 굴레를 벗어 던지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지 싶다.

연세언어치료실 02-2683-7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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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lyn 2011-06-29 22:50:18
Wham bam thank you, ma혪am, my qeuistnos are answered!

Rangle 2011-06-28 23:15:44
Now that혪s sublte! Great to hear from you.